오피니언 사설

지방자치 '기초 공천제'를 없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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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법무부는 지방선거의 정당 공천 대상에서 기초단체장(일반시 시장.군수.구청장)과 기초의원은 제외하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냈다. '기초 공천제'는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하기보다 매관매직형 비리에 이용되는 등 부작용이 많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래 기초 자치단체장까지는 공천 대상이었지만 기초의원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선거부터 기초의원까지로 확대됐다. 정당이 책임지고 적합한 인사를 발탁하고, 당선자가 정당 책임정치의 정신으로 지방행정을 이끌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공천제 없이도 실질적으로는 정당이 후보를 미는 '내천(內薦)제'가 만연됐으며 정당 공천이 없어 유권자가 수많은 후보자를 변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많은 폐해를 낳았다. 공천권을 쥔 의원이나 원외 지역 책임자들이 잠재적 경쟁자를 배제하고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인사들에게 공천을 주는 현상이 생겼다. 게다가 공천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가 많아 시장은 얼마, 의원은 얼마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돈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니 돈으로 자리를 사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선거부터 기초의원들도 보수를 받게 되니 취직 차원에서 공천을 사려는 행태도 적잖았다. 지난해 지방선거와 관련해 공천 비리로 입건된 사람은 모두 118명이다. 이 중 80명이 한나라당인데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로 인해 매직(賣職)이 몰린 것이다.

기초단체장.의원들이 당적을 가지는 것이 지방행정의 발전에 별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순수하게 행정적이어야 할 기초 지방행정이 중앙의 정치 바람에 휩쓸릴 우려도 있다. 당선자가 주민을 위해 일하기보다 공천권자에게 충성하는 사례도 많다. 이 제도를 폐지하느냐 여부는 국회의원의 손에 달렸다. 폐지가 마땅함에도 의원들이 이에 반대한다면 수상한 냄새가 나는 공천권을 사수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비칠 것이다. 지방자치에서 '정치자치'를 제거하고 생활자치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