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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Blog]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 일본 영화판에 우뚝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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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일본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 중 씨네콰논 이봉우(47) 사장의 이름을 아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혹시 이름을 모르더라도 '훌라걸스' '박치기' '유레루' '아무도 모른다'의 제작자라고 하면 별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재일동포 이상일 감독이 연출한 '훌라걸스'는 올 2월 열린 제30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여우조연.각본.화제작품상 등 5관왕에 올랐다. 1960년대 일본 탄광촌 소녀들이 살아남기 위해 훌라춤을 추는 댄서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도호.도에이.쇼치쿠.가도가와 등 4대 영화사가 꽉 잡고 있는 일본 영화계에서 작은 영화사인 씨네콰논이 만든 '훌라걸스'의 성공은 이변으로 기록될 만하다. 더구나 재일동포 제작자와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 사장의 첫 작품인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감독 최양일)가 3일 개봉한다. 서울 명동에서 직접 운영하는 CQN이란 멀티플렉스에서다. 93년에 만든 영화니까 14년 만에야 국내에 소개되는 셈이다. 앞으로 '도쿄 디럭스'(95년), '빌리켄'(96년), '전국노래자랑'(98년) 등 씨네콰논의 초기작을 차례로 개봉할 예정이다.

'달은…'는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모두가 힘겹게 살아가던 90년대 초반이 배경이지만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우리도 외환위기 직후에는 비슷한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재일동포 택시기사 충남(기시타니 고로)을 중심으로 동료 기사, 필리핀 접대부, 야쿠자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이들은 가난과 차별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이른바 '잡초 같은 생명력'이 잘 드러난다. 밑바닥 인생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씨네콰논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다.

그런 생명력은 실제 이 사장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누가 보더라도 성공한 영화 제작자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진 남모르는 고생도 많았다. 그는 "처음엔 성공과 거리가 멀어 1000만 엔을 빌렸지만 실패한 적도 있었다"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용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영화의 신'으로 불리는 평론가 요도가와 나가하루의 이름을 딴 상을 받는 자리에서다. 어쩌면 '잡초 같은 생명력'은 이봉우라는 개인뿐 아니라 일본에서 재일동포 전체가 끈질기게 버텨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달 중순 일본에서 '박치기 러브&피스'라는 새 영화를 내놓는다. 민족 분단과 일본사회의 편견 속에서 힘들게 사는 동포 청소년들을 그린 '박치기'의 속편이다. 이번에는 한국의 쇼박스도 제작비를 댔다. 전작이 일본 사회에서 널리 공감을 얻어 비평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듯이 이번에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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