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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성교제-장소 없고 부모반대로 "은밀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영(13·서울J국교6)은 한달 전부터 밤11시만 되면 무선전화기를 자기 방으로 가져가 같은 반의 영철(13)과 통화를 한다.
6 학년에 올라와 같은 반이 되면서 서로 친하게 된 둘은 최근 이른바 「커플사이」로 발전한 것.
『엄마에게 남자친구와 집에 와서 놀아도 되느냐고 물었다가 「조그만 것들이 무슨 남자친구냐」며 공부나 하라는 꾸중을 들었어요. 그 뒤부터 부모님이 잠든 밤11시부터 함께 통화하는 것으로 만남을 대신하고 있어요.』
지영은 영칠이를 학교에서 만나면 아이들이 화장실에 그 사실을 낙서하거나 놀리고 동네 놀이터나 공원에 가면 동네 어른들이 엄마에게 이를 까봐 갈 수 없다며 함께 만날 장소가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친한 여자친구가 선생님께 귀여움을 받거나·칭찬을 받는걸 보면 샘도 나고 기분이 나빠요. 그렇지만 남자친구가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자랑스러워요. 또 내가 잘한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도 남자친구예요.』
서울K국교 5학년인 영희(12)가 말하는 남자친구 예찬론이다. 국민학생들 사이의 이성교제(?)는 이제 색다른 얘기가 아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이성친구를 몹시 갖고 싶어할 뿐 아니라 좋아하는 이성친구에 대한 표현도 적극적이다.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으면 잘 보이려고 머리에 무스를 발라 옆으로 넘기고 옷도 깔끔하게 입으려고 노력해요. 다음 단계는 샤프펜슬이나 인형·목걸이 등을 편지와 함께 선물해요. 내가 좋으면 여자아이가 그것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내 앞에서 그 선물을 버려요.』
서울J국교 6학년 재호(13)는 여자아이와 특별한(?) 친구가 되는 일반적인 방법을 일러준다. 그렇지만 요즘은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먼저 편지를 보내거나 친구가 돼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덧붙였다.
『내 여자친구는 착하고 내 걱정을 많이 해주고 칭찬도 많이 해줘 기분이 우쭐하게 해줘요.』
『남자친구는 힘세고 어른스럽고 용기가 있어서 좋아요.』 은주(12·서울J국교5)는 자기 남차친구가 정말 착한 아이라고 자랑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남자어린이는 공부 잘하고 잘생기고 단정한 순이고, 남자어린이들은 예쁘고 공부 잘하는 여자아이를 가장 좋아한다.
은주네 반에는 54명 중 커플이 5쌍 있다. 재호네 반은 52명중 6쌍 정도. 그러나 학교에서는 서로 내놓고 만나지 않아 누가 커플인지 모르는 경우와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아이들은 더 많이 있다는 것이 어린이들의 설명이다.
어린이커플은 대개 같은 반 친구들끼리 맺어진다. 그리고 반이 달라지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국민학교 저학년들은 학교에서도 손잡고 다니거나 선생님께 누구를 좋아하니 함께 앉도록 해 달라는 등 드러내 놓고 사귀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은밀히 사귀기 시작한다. 이성교제를 하는 어린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만날 장소가 없다는 것과 부모님의 반대.
선승(11·서울H국교5)은 『남자친구와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맨 뒷자리에 앉아 얘기를 하며 한 바퀴돌거나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만난다』며 『그래도 이렇게 만나는데는 한계가 있어 주로 편지를 쓴다』고 말했다.
선승의 어머니 최모씨(41)는 『딸이 남자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한 아이와 깊이 사귀는 것은 반대』라며 『여자아이들은 조숙해 일찍 2차 성징이 나타나는데 남자아이와 깊이 사귀다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김태연 교수(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는 『어린이들의 이성교제는 연애나 성애와는 거리가 있으며, 이성교제를 통해 자신의 나쁜 습관을 고치고 정서를 순화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 걱정상담실의 차원재 교장은 『어린이들의 이성교제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문제는 어린시절부터 숨엇 교제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비뚤어진 이성교제관을 만들어 각종 성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다』며 『부모들이 집 대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이성 친구를 맞아들이면서 이성교제시의 예절 등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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