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장-잘해도「본전」힘든 행정 첨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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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동사무장은 각 동사무소의 행정업무를 실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살림꾼이다.
동장을 보좌, 동사무소의 행정업무를 내부적으로 지휘·감독하고, 일반직원을 다독거리며 일을 독려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급기관에서 불어오는 외풍을 막는 바람막이 역할도 수행해야한다.
또 일부 민원인들의 「불친절하다」「민원처리가 늦다」「잘 봐달라」「내가 누군줄 알고 그러느냐」는 등의 고압점인 항의·회유·협박 등에 시달리며 어거지 쓰는 민원인들을 설득해야한다.
업무성격상 욕을 많이 먹는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기보다 일부러 피하는 경우도 많다. 주민들과 유대를 맺으려해도 누구는 누구를 봐준다는 소문이 나기 심상이어서 항상 거리를 두어야한다. 또한 영세민들을 대하면서 도움의 필요성은 절실하게 느끼지만 재원 및 제도의 한계로 강 건너 불보듯 해야 할때와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을 맡길 때에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러나 사무장은 주민들의 각종 진정과 사사로운 다툼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축대·하수구 고장 등 주민 불편사항에 대해 일선에 나가 확인하고 해결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행정의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저소득·영세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 신림7동 사무장 남정욱씨(58)는 이곳에서 2년5개월째 일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피부로 느끼며 산다.
속칭 「난곡마을」로 불리는 이 지역 민원은 영세민 구호 및 지원관련 사항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부에서 정하는 영세민판정기준이 매년 오르는 물가수준보다 턱없이 낮아 못사는 사람은 여전한데도 구호대상가구는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판정기준을 알 턱이 없는 일부 영세민들이 찾아와 계속지원을 호소할 때 『이젠 더 이상 도와드릴 수가 없다』고 말하려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영세민 지역동 사무장들은 무지 때문에 제 권리를 못 찾는 주민들을 위해 일을 처리해주면 동 직원이나 사무장의 배려로 혜택받은 것처럼 고마워한다고 전한다.
이에 비해 부유층지역은 주민들의 높은 의식수준과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자질구레한 민원은 적지만 일부 주민들의 고압적인 자세 앞에 항상 자존심을 죽이고 행동해야 한다.
서울의 전형적인 중산층밀집지역의 하나인 노원구 상계6동은 1백%아파트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폐쇄적이고 집단민원보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로 동사무소를 찾는 사람이 많다.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인지 주민들과 대화기회가 적은게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또 학력이 비교적 높고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 나아지다 보니 동 직원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박성옥 사무장(40)이 털어놓는 고층.
박 사무장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빠듯한 동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며 모든 업무를 지휘·감독해야 한다.
또 동장과 자신을 제외한 직원 27명의 애로사항을 살펴 이를 해결해야하며 인사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와 함께 대민 행정의 원만한 수행을 위해 직원교육과 훈련을 병행해야한다.
이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은 주민들로부터 무시당한 동 직원을 다독거리며 사기를 북돋워 주는 일. 특히 동 직원들이 캠페인 참가권유나 공과금 징수통지서 전당을 위해 아파트를 방문하면 주부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거나 외판사원정도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 구청이나 본청으로 전보를 호소할 때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본인이 아닌 경우 발급할 수 없는 남의 증빙서류를 떼 달라는 무리한 요구도 많아 가끔 동사무소에서 주민과 직원들이 언쟁을 벌일 때 주민을 설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 동에 접수되는 공문은 홍보·사무지침·세무행정지침 등 하루평균 50∼60건에 이르고 있으며 이들 공문을 적절히 배정하고 시행여부를 감독하는 일도 하루업무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계6동의 1년 예산은 약1억원. 이 가운데 동장직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2천만 원은 대부분 사무장이 실무집행을 담당해야 하므로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다. 현행법은 동안에서 벌어지는 사업 중 3백만원 미만의 각종 공사는 구청 해당과의 기술검토를 받아 동장이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있어 빈틈없는 예산관리가 필수적이다.
서울의 고급주택지인 방배본동 사무장 홍중기씨(54)는 관내에 장관급 고위공직자와 대기업회장 등 부유층이 허다해 고유업무 외에도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사무장역할이 다른 곳보다 몇 배나 힘들다고 말했다.
선거때가 되면 사무장은 관권의 선거개입시비에 휘말려 진통을 겪어야 한다.
과거의 경우 각종선거가 다가오면 사무장은 선거인명부 작성과 열람·투표통지표배부, 투·개표 종사원 선발 등 기본업무뿐만 아니라 선거결과 여당의 득표율이 저조할 경우 뒤따르는 불이익을 막기 위해 표나지 않은 선거운동을 해야하는 악역도 맡아야하므로 관권개입시비가 일 때마다 희생양이 되곤 했다.
이와 관련, 사무장들은 자유당정권에서부터 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지역사정을 잘 아는 사무장들이 여당의 선거운동에 깊숙하게 개입한 것으로 알고있으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진데다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싫어 알레르기반응까지 보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암암리에 소극적인 여당지원 활동을 펴고 있는 것도 사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대부분 선거의 행정지원에 그치고 있으나 중소도시의 사무장은 지역의 동향파악이나 지지성향분석 등 여당의 일선정보원 노릇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전북의 한 사무장은 주민들에게 여당지지를 유도하라는 상부의 압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여당유세현장에 청중을 동원이라도 할라치면 야성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실토했다.
사무장들의 업무중 가장 골치 아픈 업무는 체육대회 등 도·시 단위. 행사때 합당된 인원을 동원하는 일. 대도시에서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나 중·소도시에서는 인원동원의 효율성으로 인해 아직도 동사무소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무장들은 또한 관내 무허가 건물 철거를 지휘하고 여러 법규위반사례를 적발해 보고하는 업무도 맡아야한다.
부산시 부전1동 사무장 김국용씨(50)는 『심야유흥업소 단속과 불법벽보제거, 노상적치물 제거, 포장마차단속 등으로 업무량이 폭주해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고 말했다.
일선 행정의 파수꾼이 자동사무소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사무장이 겪는 애환과 보람, 위상과 기능은 우리 행정현실의 명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과 격려가 뒤따라야한다는 것이 행정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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