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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해져야 할 아베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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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가을 아베가 총리 후보가 되자 국회 안팎에서 목소리가 커졌다. 의원 신분일 때는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일본의 총리대신이 되면 무라야마 담화 및 고노 담화, 그리고 아시아여성기금이 전달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총리의 '사죄 편지'를 견지하고 정신을 계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국가는 혼란에 빠지고 아시아 각국은 결정적으로 불신감을 품게 돼 국제 관계가 꼬이고 국익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되지 않겠는가.

총리가 된 아베는 국민 다수의 의견, 해외 각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정부 기본 견해를 그대로 계승한다고 표명했다. 그것은 현명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옛 참모들은 불만스러워했고 고노 담화의 수정을 당내에서 정식으로 제기하는 그룹이 나타났다. 여기에 미국이 반응을 보였다. 미 하원에 마이클 혼다 의원의 결의안이 제출된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약간 변명을 하려 한 것이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생각을 바꿔 고노 담화의 강제성 인식을 지지하고, 아시아여성기금을 지지하며 역대 총리가 보낸 사죄 편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표명했다. 이에 따라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뿐 아니라 아시아여성기금 사업, 역대 총리의 사죄 편지 역시 새 총리의 승인을 얻게 됐다.

이번 미국 방문과 정상회담은 제3 라운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먼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사죄'의 기분을 전하고, 이어 미국에 가서는 회담석상에서 직접 발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고노 관방장관 담화와 아베 총리의 미국 내에서의 발언은 매우 솔직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아사히 신문 4월 28일자). 이에 따라 자민당 내의 뿌리 깊은 고노 담화 수정 열망은 끝내 덮여지게 됐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러한 확인이 최종적으로 행해졌다면, 그에 입각한 노력도 행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 길은 국교가 없는 까닭에 북한의 옛 위안부에 대해 아무런 사업을 행하지 못했던 아시아여성기금을 대신해 정부가 동등한 정도의 사죄와 보상 사업을 북한의 피해자에 대해 실시할 용의가 있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아베 총리가 표명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가 진실한 것임이 입증될 것이다.

북한에서는 2000년 정부의 조사위원회에 옛 위안부 218명이 신고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위안부 사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버마 국경 지대에서 보호받고 있는 조선인 위안부의 사진일 것이다. 거기엔 만삭의 배를 한 임신부가 등장한다. 그 여성은 지난해 북한에서 숨진 박영심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의 위안부들이 점점 세상을 떠나고 있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이 사람들에 대해 아시아여성기금과 동등한 정도의 사업을 하는 것은,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아베 총리가 서명한 '사죄의 편지'를 전달하고 아울러 정부 자금으로 의료복지 지원을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의료복지 지원만을 실시한 네덜란드의 사례에서는 한 사람에 300만 엔 상당이었다. 이와 같은 사업을 국교 수립 전에 앞당겨 실시할 용의가 있다고 천명하면 북한 측은 무시하지 못하고 교섭이 이뤄질 것이다. 거기서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한발 더 나아간 교섭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아베 총리는 정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납치 문제의 해결은커녕 아무런 진전도 얻어낼 수 없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