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 『스파르타쿠스』를 보고-송영|야성적 남성 군무 압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인간육체가 지닌 다양하고 현란한 표현 능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춤은 인류에게 가장 친근하고 오랜 예술이면서도 현대의 양식화된 춤은 우리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했던게 사실이다. 유리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볼쇼이의 『스파르타쿠스』를 보고 그 오류가 깨끗이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현대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그리고로비치의 안무철학이 크게 기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발레 창조를 자기의 기본철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발레의 리얼리즘이라고나 할까. 『스파르타쿠스』는 어떤 연극·영화보다 한 영웅의 비장감 넘치는 드라마를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주며 이 체험은 우리에게 분명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작곡가 하차투리안과 그리고로비치의 만남도 「행복한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차투리안은 요즘 민족분규로 알려진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그가 노예의 항거, 자유를 위한 불굴의 투쟁을 담은 이 작품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적이면서도 한편 인간 보편의 숭고한 가치인 자유에 대한 지향이란 점에서 안무자와 작곡가는 일치하고 있으며 이 점이 그리고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가 유독 성공한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아무래도 다이내믹한 남성무용에 있다. 특히 2막 서두 양치기들의 춤과 결의의 순간을 보여주는 노예들의 군무는 잇따라 펼쳐지면서도 무척 대조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양치기들의 춤은 천진난만하고 자유분방하며 이것은 기존의 발레가 보이는 엄격한 동작의 틀을 깨고 모던발레의 자연스러움에 과감히 접근하고 있었다. 잇따라 펼쳐진 노예들의 군무는 야성적 아름다움과 동작의 새로움에서 이 무용극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장면에서 그리고로비치의 섬세함과 과감한 독창성을 여실치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노예들을 유혹하는 에기나의 요염한 춤, 재회한 두 연인이 함께 어울리는 「사랑의 2인무」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소홀히 보아 넘길 수는 없다. 에기나의 춤은 기묘하고 빠른 동작으로 아슬아슬하게 규범의 선을 넘나들며 한순간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리기아·스파르타쿠스가 펼치는 「사랑의 2인무」는 어떤 서정적 작품에서 보여진 것보다 더욱 호소력 있는 비장미를 보여주었다.
『스파르타쿠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놀라운 조화」며 현대발레의 기념비이자 전범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