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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을 캔버스 삼아 현대를 그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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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05면

<20세기 예술을 이야기할 때 파졸리니를 빼놓을 수 없다. 화가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었으며 비평가이자 기호학자였던 사람. 성 정체성을 굳이 밝히자면 ‘게이’였던 그는, 영화 ‘아카토네’로 데뷔하고 ‘살로, 소돔의 120일’을 만든 뒤 동성애인에게 피격당해 숨졌다.>

파졸리니와 회화 PIER PAOLO PASOLINI

파졸리니는 화가다. 그의 전투적인 리얼리스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다 보니, 화가와 같은 탐미주의 특성은 가려져 있었다. 다재다능한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영화이론가이고 영화감독인데, 평생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 사실로도 유명하다. ‘데카메론’에선 아예 화가로 출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감독의 예술적 행위는 화가처럼 ‘이미지’를 따라 실천된다.

파졸리니는 1961년 데뷔작 ‘아카토네’(‘거지’란 뜻)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영화 취향은 원래 영화적이라기보다는 회화적이다. 나의 머릿속에 비전처럼 있는 것은 마사초(Masaccio)의 벽화 혹은 조토(Giotto)의 벽화다. 나는 내가 좋아했던 14세기 화가들에 대한 열정을 제쳐두고는 그 어떤 이미지나 풍경화, 그리고 화면 구성을 생각할 수 없다. 나의 영화들은 마치 그림 위로 렌즈가 움직이며 잡아낸 이미지처럼 움직인다.”

감독은 사라져가던 미학인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복원한 ‘아카토네’로 데뷔하자마자 자신의 회화적 취향을 맘껏 드러낸다. ‘아카토네’는 감독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르네상스 화가 마사초의 ‘자연주의’를 영화적으로 전용한 경우다.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의 대조가 특징인 마사초의 ‘명암대조법’ 그림처럼 파졸리니는 인물들의 외양을 잡아내고, 영화 공간을 구성한다. 특히 명암대조의 얼굴 클로즈업들은 마사초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평민들을 현대의 민중들로 재해석한 것이다.

초기 감독 시절 파졸리니는 주로 르네상스,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크 작품에서 회화 이미지를 끌어 썼다. 이탈리아의 회화가 곧 세계의 회화로 통할 때의 작품들이다. 마사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폰토르모 등의 작품에서 감독은 동시대 인물 군상의 묘사법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미술에 대한 애착은 더욱 커져, 두 번째 장편인 ‘맘마 로마’(1962)부터 감독은 아예 그림을 화면으로 옮겨놓는다. 이런 직접인용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 ‘마태복음’(1964)이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다 쓰러져가는 돌집을 배경으로 한 처녀가 배가 불러온 채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화면은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수태 중인 마리아’(1465)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왜 이럴까? 도대체 미술작품을 끌어 쓰며 감독은 무엇을 시도하려 했을까? 먼저,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망이 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화면을 그림처럼 꾸미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미술 인용의 효과는 미학적인 차원보다는 관객과의 관계 차원에서 더욱 큰 의미를 만들어낸다. 영화 해석의 방향이 감독뿐만 아니라 관객에 의해서도 대거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소통은 감독의 의도를 초월해 있는 것인데, 이를테면 미술을 이용한 감독의 특별한 제안을 받아들인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자마자 영화 해석의 특권적인 자리에 앉게 된다. 텍스트(영화)와 다른 텍스트(미술) 사이의 간극을 관객 스스로 메우는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눈은 커지고 정신은 더욱 집중되며, 관객은 자신을 적극적인 해석가로 변모시키고, 스스로에게 권위까지 부여한다. 다시 말해 과거처럼 수동적이고 일방적으로 해석을 전달받는 관객에서, 적극적으로 해석에 개입하는 능동적인 관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현대회화 이용, 부르주아에 대한 반감 드러내

‘마태복음’ 이후 미술 인용은 눈에 띄게 감소한다. 대신 미술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들을 영화 해석의 열쇠로 제공하는 사례들이 늘어난다. 이를테면 ‘구름이란 무엇인가’(1968)는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1657)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림처럼 ‘재현의 재현’을 테마로 다룰 것임을 암시하는 식이다. 또 ‘테오레마’(1968)에서 두 남자가 동성애적 관계를 맺기 전에 영국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화집에서 ‘책형을 근거로 한 형상의 세 연구’(1944)를 보고 있는데, 두 남자 중 한 명은 결국 그림처럼 ‘핏빛’ 상처를 입게 된다.

‘테오레마’에서 보듯, 파졸리니는 현대회화를 주로 부르주아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때 이용했다. 부르주아 윤리의 착취와 파괴본능을 주목하는 작품들, 곧 ‘분노’(1963), ‘돼지우리’(1969), 그리고 유작이 된 ‘살로, 소돔의 120일’(1975) 등에는 하나같이 현대회화들이 공간적 배경을 장식하는 데 동원된다. 현대회화의 특징, 다시 말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균형이 무너진 공간’에서 감독은 부르주아의 혼동을 보았던 것이다. 특히 유작인 ‘살로, 소돔의 120일’은 브라크, 파이닝어, 뒤샹, 레제, 쉬비터스 등 20세기 초 입체파와 다다이즘 계열 작가들의 작품들을 기억나게 하는 독특한 세트들로 유명하다.

파졸리니는 성서와 그리스 신화를 이용해 부르주아를 공격하고 하층민중의 역동성에서 희망을 품는 작품들을 줄곧 발표했는데, 삶의 후반부에서는 급변하여 생명의 행복에 대한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는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섹스의 쾌락이 영화적 테마로 부각된다. ‘데카메론’(1971), ‘캔터베리 이야기’(1972), ‘천일야화’(1974) 등 세 작품을 묶어 ‘생명 3부작’이라고 부르며, 이때의 회화 이용은 초기처럼 인용이 주조를 이룬다.

미술과 관련해 돋보이는 작품은 ‘데카메론’이다. 플랑드르의 풍속화가 피터 브뤼겔에게 바치는 헌사나 다름없는 영화인데, 특히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결’(1559), ‘환락경의 나라’(1567)에 묘사된 무질서와 죽음의 상징을 이용해 고삐 풀린 쾌락의 세상에 슬쩍 검은 그림자를 던져놓는다. 유희의 방종을 즐기던 영화는 마지막에 결국 조토의 ‘최후의 심판’(1304~06)처럼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종결된다.

에코 같은 기호학자들은 ‘상호텍스트성’의 미덕으로 독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지적했고, 그럼으로써 작품도 다층적인 의미를 획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영화가 미술을, 또 미술이 영화를 서로 참고할 때 그 둘 사이에서 새롭게 생성된 맥락은 독자들이 독립적으로 해석해 간다는 의미다. 과거와 달리 예술의 소비자가 어느덧 의미생성의 한 축을 단단히 해내는 것인데, 파졸리니의 미술 인용은 이런 상호텍스트성의 미덕이 넘쳐나는 공간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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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씨는 미술과 몸을 섞은 영화 이야기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로 이름난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사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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