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다다시의 와인의 기쁨 [3]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호 29면

화원에 와 있는 듯 화려한 꽃향기가 피어오르는 39샤토 마고 200039

‘한국에는 지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부럽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지진국가로 불릴 만큼 지진이 많다. 지난 15년을 돌이켜봐도 도시가 붕괴될 정도의 대지진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흔들, 하고 쨍그랑, 병이 깨지면 고급 와인도 바로 끝장이다. 실로 와인 마니아에게 지진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지진이 무서워…와인 구하기 대작전

와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나는 갖가지 지진예지 연구단체와 지진예지 사이트의 회원으로 등록해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예지정보를 입수할 수 있도록 늘 신경 쓰고 있다. 그런데 잊을 수도 없는 2년 반 전, 회원으로 있는 예지단체로부터 ‘머잖아 도쿄에 대형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 있음!’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당시 우리 남매는 셀러에 넣지 못한 대량의 와인을 보관하기 위해 집 근처에 지은 지 40년 된 값싼 목조 아파트 한 채를 빌려 쓰고 있었다. 벽에 멋대로 단열재를 붙이고 와인 선반을 설치, 공조기를 계속 틀어 실내온도를 섭씨 16∼18도로 유지, 와인을 눕혀서 ‘셀러’ 대용으로 쓴 것이다.

우리 남매의 집은 걸어서 6, 7분 거리에 있다. 이 셀러 집은 서로의 집에서 가깝고, 집세도 싸서 편리했지만 건물이 낡아 약하다는 게 문제였다. 대지진이 일어나면 아마 아파트가 통째로 무너질 것이리라.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사랑하는 와인들은 어떻게 되지? 필사적으로 구입한 보르도의 그레이트 빈티지 2000년 샤토 무통 로실드와 샤토 마고는?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동생도 “그 집 와인이 전부 깨지면 충격으로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말 거야”라며 전전긍긍이다. 어떻게든 대지진이 오기 전에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는 마침내 전대미문의 ‘와인 이사’를 결행하기로 했다.

이사할 곳을 구할 때는 부동산 중개소에 “지진이 일어나도 끄떡없는 맨션을 찾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운 좋게 “근처에 마침 적당한 물건이 나왔습니다”라는 연락이 왔다. 집세는 낡은 아파트의 두 배 이상 됐지만, 와인이 지진으로 깨지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우리 남매는 몇 만 엔 하는 DRC 같은 고급 와인도 비용을 서로 반분해 금전적인 부담을 경감해 왔다. 비싼 집세도 반씩 부담하면 그리 걱정할 것 없다. 어쨌든 서두르자는 생각에 바로 계약금을 내고 대량의 와인을 나르기 위해 아르바이트 학생 네 명을 고용했다.

그 이사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정말 굉장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뿐이다. 가장 장관이었던 건 아파트 벽에 붙인 단열재를 떼어내자 빼곡하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던 것이다. 가습기를 계속 틀어 습도 60%대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와인을 뉘어 보관할 때 온도관리는 물론이고 습도관리도 중요하다. 습도가 너무 낮으면 코르크가 말라 줄어들어 그 틈으로 산소가 들어가 열화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프랑스 샤토의 지하 셀러는 대개 곰팡이 냄새가 나는데, 이곳은 명색이 아파트다. 곰팡이가 잔뜩 핀 것은 역시 실수였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이 곰팡이를 들이마셔서 불쾌한데다 천 병쯤 되는 와인 스톡을 차로 몇 차례 오가며 옮겼기 때문에 이사가 끝날 무렵에는 모두 입도 뻥긋 못할 정도로 녹초가 돼 있었다….

결국 곰팡이 슨 벽은 우리가 새로 벽을 바르기로 했고, 이렇게 해서 와인 이사는 수고와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 게다가 그 뒤 걱정했던 대지진이 일어났는가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진예지는 점만큼이나 안 맞아”라고 동생은 투덜거렸다.

하지만 옮긴 이 건물, 저층이 견고하기 그지없는데다 열쇠도 2개나 달려 있어서 역시 안심이 된다. 우리의 와인들은 다시는 이사하는 일 없이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참고로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혼마 조스케의 집은 우리의 이 ‘셀러 집’이 모델이다. 와인 편집광 혼마 조스케는 곧 우리 남매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번역 설은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