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 태우면 처벌 받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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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12면

‘명문대생, 성조기 불 질러 체포’ 제목의 자극적인 기사가 이달 초 미국 신문에 실려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코네티컷주 뉴헤이번에서 예일대생 3명이 가정집에 걸려 있는 성조기에 불을 질렀고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경찰에 붙잡혔다는 내용이었다. 기삿거리가 아닐 수 없다. 성조기를 존경하는 미국 시민들은 나라의 상징인 국기를 미국 땅에서 훼손하는 행위에 당황하고 불쾌했을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애국으로 여기는 인권단체도 이 사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반전 데모의 일환으로 시민들이 국기를 태웠으나 당시 50개 주 법과 연방법상 범죄로 규정되어 있었다. 의로운 범죄로 생각한 이들은 처벌을 무릅쓰고 국기를 불태웠다. 베트남전이 끝난 다음에도 그런 항의 방법이 간혹 동원됐다.

1984년 존슨이란 사람이 공화당 당대회장 앞에서 성조기를 태우다가 체포됐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국기 손상이 하나의 표현행위이고 그것을 처벌하는 법은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수정 헌법 제1조(First Amendment)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수정 헌법 제1조는 ‘언론ㆍ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의 시정을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존슨 사건은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가 5년 만인 89년 피고인의 주장대로 판결이 내려졌다.

법이 금지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이지만, 국기 소각을 처벌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표현ㆍ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수정 헌법 1조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장이 미국 국가(國歌)와 애국시를 인용하며 성조기가 미국인들의 가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대의견을 냈으나 소용없었다.

이 판결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뒤 국회가 법을 일부 수정했으나 그것도 위헌으로 판결 났다. 개헌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자 국회 회기마다 애국자를 자처하는 의원들이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필요한 표를 얻지 못했다.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상하 양원 3분의 2의 승인을 얻고, 50개 주의 4분의 3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으로 금지된 때 그렇게 유행하던 성조기 소각 데모는 대법원의 판결 이후 수년 동안 사라졌다. 요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조기를 휘두르며 자신의 애국심을 강조한다.

그래서 먼저 언급한 학생들의 국기 소각 기사가 이색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새벽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장난으로 불사른 것이었다는 점이다. 죄목도 국기 모독이 아니라 방화죄와 치안방해죄였다. 특별한 뜻을 전달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술이 그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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