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 구속영장 신청 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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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보복 폭행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출두하고 있다. 김 회장은 수사 과정이 동영상으로 낱낱이 기록되는 ‘진술녹화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동영상 joins.com [변선구 기자]

29일 오후 3시55분 서울 남대문경찰서. 검은색 벤츠S600 승용차에 탄 김승연(55) 한화그룹 회장이 도착했다. 검은색 양복에 푸른 넥타이를 맨 김 회장은 의경 1개 중대 100여 명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룹 총수가 폭행 혐의로 일선 경찰서에 출두하는 사상 초유의 순간이었다.

김 회장은 수초간 눈에 힘을 주고 가만히 주위를 응시했다. 상처 난 자존심 탓인지 불만에 찬 모습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60여 기자의 질문 공세와 카메라 플래시가 빗발치자 얼굴이 곧 어두워졌다. 심경을 묻자 "개인 문제로 물의 일으켜 대단히 죄송하다. 경찰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다"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청계산 폭행 현장에 있었느냐'는 질문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8일 미국 예일대에 다니는 둘째 아들(21)이 맞고 돌아오자 김 회장이 직접 나서 S클럽 종업원을 청계산 인근 신축 건물로 끌고 가 보복 폭행을 했다는 혐의를 부인한 것이다.

이어 빠른 걸음으로 50m 떨어진 경찰서 1층의 진술녹화실로 들어갔다. 술집 종업원들에게 보복 폭행을 가한 '피의자' 신분이었다. 굳은 표정의 비서 두 명과 한화그룹 법무실장 채정석 변호사만 뒤를 따랐다. 이번엔 경호원들을 대동하지 않았다.

여론은 법보다 주먹을 우선시하는 사회 지도층의 일탈에 분노.실망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고려대 유진희(법학) 교수는 "일부 사회 지도층이 예외적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여론 악화를 의식한 경찰도 강경 분위기로 선회했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조사가 한창이던 오후 6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자리에서 "사회의 모든 분이 법 질서를 지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도 이례적으로 엄정한 수사를 독려했다.

조사는 남대문경찰서 강대원(56) 수사과장과 이진영(44) 강력2팀장이 했다. 강 수사과장은 2004년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장 재직 시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맡았던 베테랑 수사관이다. 채 변호사를 대동한 김 회장과 수사팀은 ▶폭행 가담▶폭력배 동원▶납치.감금 여부를 놓고 밤늦도록 진실 공방을 벌였다. 김 회장은 한때 거부한 피해자와의 대질신문은 수용했다. 그동안 경찰 수뇌부는 김 회장의 사법 처리 수위를 고심한 끝에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폭행 혐의 피의자 김승연씨'는 3평 남짓한 조사실에서 10여 시간을 보낸 뒤 일단 귀가했다.

한애란.구민정.최선욱 기자 <aeyani@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 진술녹화실=방음벽으로 둘러싸인 3.4평 크기의 조사실. 진술 번복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나 안정적 조사가 필요한 사건을 조사할 때 사용한다. 두 대의 녹화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카메라 한 대는 조사실 전경을, 다른 한 대는 피조사자의 얼굴 표정을 클로즈업해 촬영한다. 왼쪽 벽면의 유리창은 바깥 모니터실에서 들여다볼 수 있지만 안에서는 거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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