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 인기」가 결단 부채질/이종찬후보 행보 어디까지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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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시 5년 못기다린다”배수진/“홀로서기는 성급”비판론 대두
15일 새벽 1시반 시내 모호텔의 업무용 객실. 전날 부산행으로 2시간밖에 못잔 민자당의 이종찬후보는 내려오려는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2개의 길다란 소파엔 이 후보 진영 사람들이 앉았다. 장경우부본부장,최재욱대변인,김현욱·김용환·강우혁의원,조기상위원장 등의 얼굴이 보였다.
14일 저녁 수원집회에 대한 소감이 쏟아져나왔다. 대의원 참석률이 50%도 안된걸 놓고 『이건 경선이 아니라 고사작전이자 말살계획』이라는 성토가 튀어나왔다.
김 후보측이 수락했다는 「18일 합동연설회」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대책회의를 끝낸후 광화문 사람들은 하나둘 방을 나섰다. 혼자 남은 이 후보는 잘 안피우는 담배를 두세대 연거푸 태웠다. 『오늘이 중대결심 마감시한이니 할말 있으면 다 해보라』는 인터뷰 요청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할 말은 다했다』는 표정이었다.
『경선을 거부할거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웃기만 했다.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은 긴장감과 별일 있겠느냐는 태평스러움이 동시에 섞여있는 표정이다.
『이 후보는 정말 경선을 거부할까. 그리고 당에서 뛰쳐나갈까.』
지금 광화문(이 후보) 여의도(김영삼후보)진영,나아가 정치권은 이 수수께끼(?)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이 물음에 이 후보 주변의 얘기는 우선 이렇다.
『새 정치하자고 나섰는데 불공정·외압·들러리 속에 파묻힐 이유가 뭐냐. 국민은 새 인물을 바라고 있다. 이제는 당 밖으로 나가 홀로서기를 해야한다.』(측근 P씨)
『정치는 현실이다. 잘하면 뒤집을 수도 있는데 왜 나가느냐. 설사 진다해도 표를 많이 얻으면 다음번을 노릴 수 있다.』(핵심관계자 K씨)
『어느 누가 나가야 한다고 후보한테 말할 수 있느냐. 결국 최종결단은 후보의 마음에 달렸다. 그가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호남위원장 C씨)
무지개 색깔 만큼이나 다양한 설왕설래중에 정답에 가까이 가는 얘기는 마지막의 이 후보 결단론인 것 같다.
채문식대책위원장도 14일 오후 일부러 기자실에 찾아와 『후보가 무슨 결단을 내리든 대책위는 따라줘야 한다』고 말해 이런 분위기를 슬쩍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이 후보는 어느 쪽으로 갈까. 이 후보는 요즘 「자유경선 수호」라는 명분과 함께 자신의 「홀로서기」가능성에 상당히 심취되어 있는듯 하다.
지난 4일 서울 KOEX에서부터 출발해 대전·광주 집회를 거치면서 그는 점점 강경한 쪽으로 격앙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느정도 동원된 청중이긴 했지만 이 후보는 대전대회 열기에 매우 고무됐다고 한다. 덧붙여 일반유권자 상대 여론조사 결과 YS를 앞지르고 있다는 자체분석도 그를 부추기고 있다.
핵심측근 J씨의 이 후보 심리진단­.
『단일화 이후 이 후보의 대중적 인기가 급상승했다. 한 정치인이 그토록 짧은 시간내에 그렇게 급성장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그러니 후보 본인이야 고무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이 후보는 점점 92년 12월을 놓치고 다시 5년을 기다린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후보의 주관적인 정세분석이다. 홀로서기론에 대해 너무 성급하고 조급한 몸짓이라는 비판론이 이 후보 진영 내에도 무성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물론 몇번의 집회열기에 후보가 「도취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에 적지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어떤 정치인 치고 마음먹고 청중을 모을 경우 그정도 열기의 대회를 못열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거품인기」를 착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또 다른 측근은 『이 후보가 득실을 저울질 하고 있다』고 했다.
뛰쳐나갈 경우 광화문 진영에서도 운명의 배에 동승할 인사가 잘해야 다섯손가락 꼽기가 힘들 정도이고 신당창당이나 무소속 출마 모두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카드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 『아무리 불공정이라지만 대의원을 무시하고 돌아앉았다』『새정치라는게 고작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과 독선의 노선이냐』는 혹독한 비판이 뒤따를테고 심지어 『나가봐야 또 다른 박찬종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다수의 관측이다.
그래서 노심을 쿡쿡 찔러 놀라게 하면서 이 후보는 바둑의 「꽃놀이패」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과 김 후보를 몰아붙여 대의원의 반란을 끌어내 신승을 거두면 더할 나위없이 좋고 선전만 해도 당내에서 강력한 비주류로 남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후보 중대결심의 시한은 이제 오늘(15일) 하루밖에 없다. 그의 계산과 명분을 당장 민자당 대의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심사다. 그가 아무리 격앙해도 대의원들이 냉정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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