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느와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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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화용어로 「필름 느와르」(film noir)라는 것이 있다. 불어인데 직역하면 「검은 영화」란 뜻이다. 4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는 기간중 프랑스에서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지하실의 멜러디』등 범죄와 폭력을 다룬 일련의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이 말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필름 느와르가 전세계의 영화팬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자 영화의 메카인 할리우드가 필름 느와르 제작에 뛰어 들었고,세계 각국의 영화계는 한동안 범죄 폭력영화가 판을 쳤다.
영화 흥행에 남다른 솜씨를 보여온 홍콩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다소 늦게 필름 느와르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본고장에서 필름 느와르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져 갔음에도 홍콩의 범죄 폭력영화에 대한 인기는 계속 치솟기만 했다. 특히 80년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필름 느와르라면 대뜸 홍콩영화를 떠올릴만큼 범죄 폭력영화에서 홍콩은 계속 선두를 달려왔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선 「홍콩 느와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그것이 마치 범죄폭력영화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홍콩 느와르 팬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취미를 물으면 「홍콩영화 관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단순히 「영화감상」이라고 대답하지 않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예술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를 보듯 장면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전문가들은 본 바닥의 필름 느와르가 홍콩 느와르는 영화예술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홍콩 느와르들이 그 제작의 기본방침을 「제작비는 가장 싸게,내용은 가장 잔혹하게」로 정하고 있는 탓에 예술성을 염두에 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YMCA 시민영화아카데미가 조사한 것을 보면 홍콩 느와르에는 보통 1편당 죽는 사람이 1백명을 넘고 있다니 그 잔혹성을 대충 짐작할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화수입업자들간에는 홍콩 느와르 수입경쟁이 붙어 수입가격을 턱없이 올려놓고 있는 것이 우리네 영화현실이다. 홍콩 느와르의 흥행은 누워서 떡먹기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탓이다. 뒤늦게나마 문화부가 홍콩영화 수입을 강력 규제키로 했다니 다행이라고나 할까.<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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