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산세, 힘겨루기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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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 봄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부동산 투기 열풍은 순식간에 전국 주요 도시를 휩쓸고 지나갔다. 태풍 '매미'의 위력도 서민들에게 이처럼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온 나라가 투기 열풍에 시달린 후에야 정책당국이 뒷북치듯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비록 늦긴 했으나 강력한 투기 대책이라서 조만간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고 또 실제로 진정 기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한 정부시책에 복병이 나타났다. 서울시장과 25개 구청장이 부동산 안정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재산세 과세 표준 개편안이 서울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행자부가 제시한 인상안에 대해 서울시장과 구청장들이 과표율을 절반 정도로 낮출 것을 요구한 것이다.

심지어 이명박 시장은 '갑작스럽게 재산세를 올리는 것은 거꾸로 서민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재산세를 올릴 경우 30평형대의 중산층 아파트 재산세 인상률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 구청장들은 '지방 분권을 강조하는 중앙정부가 분권의 핵심인 지방재정권을 환수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와 구청들의 이런 반발에 대해 행자부는 '정부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자치단체의 재산세 과표 결정권을 정부로 이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서로 충돌하고 있다.

재산세 과표 결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서울시 간의 첨예한 갈등은 지방 분권이 제대로 정착될 것인가를 시험하는 중요한 사례다. 서울시 의회는 지난 9월에도 아파트 재건축 연한을 완화하는 결정을 함으로써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아파트 분양가 규제가 풀린 이후 자치단체의 방만한 대응으로 개발업자와 투기꾼이 폭리를 취하고 서민들이 그 피해를 그대로 떠안아야 했던 것도 지방 분권의 부정적인 사례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 분권 정책이 성공하려면 자치정부가 시민에게 보편 타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정한 행정을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결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서민으로 보는 서울시장의 시각과 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자치 행정에 대한 도전으로 속 좁게 받아들이는 구청장의 시각은 국민 대다수의 그것과는 큰 거리가 있다.

2천만원짜리 승용차를 가지고 있으면 연간 약 1백만원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반면 강남의 7억원 이상 나가는 30평형대 아파트의 경우 재산세는 40만원 정도다. 1가구 1주택자에게 무슨 재산세를 그렇게 많이 매기느냐는 항변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한 재산을 가진 사람은 우리 사회에선 큰 재산가임이 틀림없다. 어떠한 형태로든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은 그 재산에 걸맞은 재산세를 내는 것이 조세형평 차원에서도 타당한 일이지 않은가.

선진국의 경우 재산가치의 1% 정도를 재산세로 내는 사례로 볼 때 우리의 재산세 인상은 사실 대책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재산세는 지방세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복지를 위해 쓰이는 예산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과 구청장이 합창하듯 행자부 안을 거부하는 것은 특정집단 이기주의라 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행자부의 인상안에 대해 '국세청이 발표한 새 공시지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항의하고 있지만, 이 같은 항변도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이번 재산세 인상 갈등은 형식상 부동산 안정책을 놓고 벌어진 일처럼 보인다. 이 갈등을 잘 해결하는 것이 부동산 안정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동시에 지방 분권을 둘러싼 중앙-지방 간 권력배분을 재고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공정하고 질 높은 행정을 통해 균형있는 지방 분권을 마련토록 해야 할 것이다.

전영평 대구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