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 연구소 파행 책임 싸고 공방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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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파행적 운영이 쟁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원인을 제공한 과기처·경제기획원 등 정부측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출연 연구기관에 대한 감사결과와 과기처의 자체자료 등을 통해 출연연의 정원 외 인력운용과 인건비 해결을 위한 연구비의 변칙지출, 기관장의 운영소홀 등「부실 경영과 방만하고 관료적인 운영」이 다시 한번 노출되면서 모든 화살이 연구소로만 쏠리고 있다.
과기처가 주장하는 출연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원 외 인원의 계속적인 증가로 인건비 등의 부담이 가중돼 기관운영이 오랜 부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년 1월 현재 20개 출연연의 총인원은 1만1천9백94명으로 정부가 인건비 등 예산을 지원해주는 예산상 정원이 6천3백66명(53%), 자체사업에 따른 가T/O가 3천6백36명이며 나머지는 임시직.
국가기관의 경우는 예산상 정원으로 인력이 운영되고 있으나 연구기관의 경우는 연구업무의 탄력성 등 특수성으로 인해 예산상 정원과 운영 정원간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도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나마 정부지원예산도 기준호봉을 너무 낮게 잡거나 예산단가의 과소 계상으로 실제 인건비 소요액에 비해 크게 모자라는 형편이며 여기에 다른 기관과 수준을 맞추기 위해 임금보전을 위한 일부 수당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연구소장들은 그 재원마련에 늘 고심해온 형편이었다.
그 재원중의 하나가 연구비. 지난해 특정연구개발비 9백18억원중 14%인 1백26억8천6백만원이 인건비나 판공비·장비유지비 등으로 쓰이는 등 모두 3백67억원이 인건비와 경상운영비로 초과 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KIST의 59억원, 화학연의 21억원도 이런 이유로 전용된 액수다. 원자력연의 판공비 11억 7천만원도 소장이 개인적으로 쓴 비용이 아니라 업무추진비와 직책 판공비 등 기관 전체의 판공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비용은 원래 연구 또는 사업계획서에 포함돼 있던 것으로 지금까지의 관행이었으며 과기처도 가T/O와 함께 이를 인정해온 것이 사실이다.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출연연의 문제점들은 결국 정부의 비호아래 이뤄졌던 것으로 이제 와서 아무 권한도 없는 연구소장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주인의식을 결여한 책임 회피』라며 과기처는 물론 예산 관련 기관도 말로만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동의하는 체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별 연구수행 능력보다 연구비 획득을 위한 대정부·대기관장 로비능력의 우열에 따라 과제선정이 이뤄지고 형식적인 연구성과 평가가 계속되는 한「페이퍼 메이커」만 양산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어떤 연구소에서는 지난 14년간 7백여억원을 들여 약 1천5백건의 과제를 수행했으나 기업화된 것은 50건에 불과했다.
과기처의 한 간부는『대학과 민간의 연구개발 역량이 크게 신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실한 기관운영과 연구분위기 쇄신 노력없이 아직도 70년대식의「과학기술계의 유아독존」만을 주장하는「흘러간 스타」가 많은 한 부실기업 정리와 같은 조치도 언제 닥칠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연구기관 자신은 물론 정부가 제도개선과 효율적 운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 한 과학기술계를 뒤덮고 있는 검은 구름은 걷힐 날이 없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종오 기자>
@신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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