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새 시집 '도장골 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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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제는 시인 김신용(61.사진) 앞에서 '지게꾼 시인'이란 수식어는 치워야겠다.

지게꾼 날품을 팔며 하루하루를 앙버텨낸 자신의 지난날을, 김신용의 새 시집 '도장골 시편'(천년의시작)에서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시인은 저번 시집 '환상통'(2005년)에서 '한때,/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뼈였다/목질(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간 된/등뼈'('환상통'부분)라고 적었지만, 오늘 그는 지게꾼이었던 어제의 기억을 좀체 꺼내지 않는다.

시인은 2005년 개복숭아 숲 우거진 충북 충주시 신리면의 일명 '도장골'에 내려가 한 해를 살았다. 산골에서 시인은 일기를 쓰듯이 시를 썼다. 한 편, 한 편이 포개지고 얹혀져 '도장골 시편'은 연작시를 이루었고, 시인은 모두 51편을 추려 이번 시집을 묶었다.

하지만 부드러워졌다고 말하긴 싫다. 예전처럼 가난을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연에 감사하거나 음풍농월 따위를 읊지도 않는다. 시인이 도장골로 들어간 건 지인의 빈집이 도장골에 있기 때문이었고, 도장골에서 나온 것도 집주인이 외국에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그에겐 자연을 감상할 여유 따위가 없었다.

그래서 김신용이 전하는 도장골의 풍경은, 여느 서정시의 곱상한 모양과 사뭇 다르다. 시인은 숲과 풀, 날 것과 벌레 등속에서 살아있는 것들의 위엄과 살고자 버둥대는 것들의 안간힘을 끄집어낸다. 가령 시인은 '낙법(落法)'이란 시에서 땅바닥에 떨어진 밤 한 송이로부터 어미(밤나무)의 모진 정을 읽어내고 '와선(蛙禪)'이란 시에서는 유리창에 달라붙은 청개구리로부터 여린 짐승의 꿈틀대는 본능을 발견한다.

개미를 바라보는 시선도 남다르다. 시인은 개미를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미의 등을 지켜보고, 그 위에 맺힌 개미의 땀을 찾아낸다. 거기서도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개미의 땀을 핥아먹는 미물의 연명을 시인은 헤아린다.

'개미도 땀을 흘린다/은유가 아니라, 살아 있는 땀을 흘린다/쬐그만 개미들이 흘리는 개미땀을 핥아먹고 사는 목숨도 있어서/쬐그만 개미의 땀방울을 핥아먹고 살아, 늘 목이 마른 개미손님 같은 연명(延命)도 있어서/…/개미도 땀을 흘린다.'('개미땀' 부분)

'도장골 시편' 연작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작품은 역시 '민달팽이' 편이다. 시인에게는 맨살 드러낸 민달팽이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하여 배춧 잎사귀 하나 알몸 위에 덮어준다. 그랬더니…,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버린다//치워라, 그늘!'

소위 '날 것 그대로의 밑바닥 삶'을 들여다보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김신용에 대한 시단의 평은 엇갈린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태 전부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바뀌었다. 이태 전이면 시인이 도장골로 들어갔을 무렵이다. 앞으로 '지게꾼 시인'이란 호칭은 진심으로 삼가야겠다. '좋은 시인'이라고만 적어야겠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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