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설 희석 “이 후보 달래기”/노 대통령 “중립”엄명 왜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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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대결심」으름장에 「엄정관리」원칙 반복/이 후보측 “일단 평가하나 미흡” 계속 경계
노태우대통령이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과 관련해 대통령 참모진의 행태에 질책을 했다는 청와대대변인의 공식발표는 청와대 관행상 극히 있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청와대측은 어찌보면 자해성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이같은 조치가 일부 참모진의 YS지지를 문제삼는 이종찬후보진영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고까지 말해 노 대통령의 본심을 놓고 추측이 구구하다.
○…청와대측은 이 후보가 지목한 「중립적 입장에 있어야할 인사의 중립이탈」이 단순히 대통령 주변인물에 국한된게 아니라 「그 이상」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고 현단계에서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이를테면 대통령참모진 「일부」의 「부분적」행동은 노심이 아니며 경선본질을 부정할만한 문제가 아니냐는 점을 우선 강조하고 싶은 듯하다.
김학준대변인이 노 대통령의 질책을 이 후보진영의 주장을 시인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문책성 인사는 절대 없다고 밝힌 점만 봐도 이 후보측에 대한 진무에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 핵심부는 그동안 이 후보의 경선포기 또는 탈당위협을 실현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보면서도 그같은 공세가 대통령의 이미지에 끼칠 부작용을 우려해왔다. 때문에 참모진의 체면이 다소 깎이더라도 대통령의 중립적 이미지는 흠집내지 말아야 한다는 청와대내 일부 참모의 건의가 먹힌 것으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정해창실장을 불러 질책하고 이를 김학준대변인이 발표한 과정을 놓고 청와대내에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측이 있어 권력누수현상이 청와대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 실장을 나무랐다지만 이 후보측에서 겨냥하고 있는 사람이 손주환정무수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손수석이 이끄는 정무비서실쪽은 노심의 향방을 심드렁하게 생각하는 그룹이 대통령의 의중을 알면서도 외부의 여론을 끌고 들어와 질책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한 관계자는 『나는 대통령의 뜻에서 한치도 벗어나 행동한 적이 없다』는 손 수석의 말을 상기시키며 결과적으로 누워서 침뱉는 격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 후보진영의 유도에 넘어가 청와대의 중립성을 더욱 훼손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이종찬후보 진영은 청와대의 「중립」선언이 이 후보가 치고나온 중대결심설에 대한 1차적 반응으로 보지만 그 정도로는 미진하다는 입장이다.
노 대통령 자신의 중립선언이나 주변사람에 대한 중립지시가 새로운 것이 아닐 뿐더러 이미 청와대의 위세가 부분적으로 작용해 김 후보쪽에 세를 몰아주지 않았느냐고 떨떠름해하고 있다.
심명보 본부장은 『중립에는 호의적 중립과 배타적 중립 두가지가 있다』는 함축적인 말로 경계의 고리를 슬쩍 걸어 놓았다.
대책본부는 계속해서 공세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29일 채문식대책위원장이 주재한 회의에서는 당주변에서 거론되던 손주환정무수석비서관 외에 최형우정무장관과 김진재총재비서실장까지 걸고 나왔다.
최 장관은 상도동 진영의 핵심중 핵심이며,김 실장은 부산 민정계의 거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후보 본부관계자들은 대통령이 비서진에게 엄명을 내린 취지로 볼때 자연히 대통령의 「당비서」인 총재비서실장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또 정무장관이야말로 정부와 당사이에서 교량역할을 하는 각료이므로 두말할 것도 없이 중립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관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김 후보측은 노 대통령의 이번 질책이 내부 참모들에 대한 근신촉구 측면도 없지 않으나 기본적으론 외압설을 묽게 하고 동시에 이 후보진영을 진무시키기 위한 수사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분석.
따라서 「노심」의 변화가능성이 담기거나 이로 인해 이미 잡혀진 대세가 바뀐다든지 하는 상황은 결코 없을 것으로 전망.
그러나 이 후보측의 공세가 이미 당내경쟁의 차원을 넘어 「사생결단」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김 후보측은 이번 질책성 진무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낼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김현일·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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