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커닝안하기 운동」(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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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커닝으로 얻은 학점,커닝으로 버린 양심」­.
최근 서울대 도서관앞 계단에는 이색적인 현수막이 내걸려 오가는 이의 눈길을 끈다.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답안지를 바꿔치기한 고교생이 발각을 우려해 동료학생 2백49명의 답안지를 훔쳐 쓰레기장에 버리는 세태속에 서울대에서 「커닝안하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는 학내 동아리 「S·F·C(학생신앙운동)」.
지난 한주동안만해도 1천명이 넘는 동료학생으로부터 동참서명을 받았다고 밝힌 S·F·C의 한 학생은 『대학내에서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커닝을 스스로 막아보기 위해 이 운동을 시작했다』고 그 동기를 밝혔다.
대학지성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서울대생들조차 일부나마 커닝을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한때 「커닝장학생」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커닝이 만연돼온 것이 우리의 대학 현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작은 노력이 마치 대학풍토를 개선하기 위한 고해성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운동에 대한 학내반응은 엇갈린다.
『대학생들이 사회모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덜 엄격합니다. 입시위주의 편향된 교육환경이 빚어낸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성공우선주의 때문에 대학인의 양심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사회를 옳게 인도하는 대학인의 시대적 사명을 지켜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작은 일에서부터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서명 찬성파들의 주장.
『각자 마음속으로 느껴 스스로 자제하면 될 것을 야단스럽게 서명운동까지 벌일 필요가 있나요.』 『대학사회의 작은 악을 자꾸 들춰내기만 한다면 이 때문에 자칫 이 사회의 커다란 악이 감춰질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건강한 사고의 대학생들이 다수의 침묵으로 남아있는데 일부의 잘못만을 들춰 전체 대학생들을 「미운 오리새끼」처럼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것이 요즘 대학가 분위기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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