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집」서 이룩한 일 경제대국/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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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에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실망이다. 첫째,돈들여 왔는데 외국이라는 점이 별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좀 색다른 점이 느껴져야 돈들인 맛이 날텐데 사람 얼굴이며,집이며 모양이 한국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화적 쇼크를 느낄 수가 없다.
두번째로는 일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다. 서양사람들이 토끼장이라고 비웃는 조그마한 집에서 우동 등으로 점심을 때우며 일하는 모습이 도무지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국민같지 않기 때문이다. 저럴바에야 뭣 때문에 일하느냐는 얘기도 상당히 설득력을 갖게된다. 그러고 나서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오히려 잘살지 않나 하는 착각마저 갖게된다.
실제 강남의 고급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정도를 놓고 단순 비교해 보면 우리가 더 잘산다고 할 수도 있다. 도쿄(동경)에서 실평수 25평 이상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일본에서도 소득이 높은 계층이다. 겉으로 나타난 이같은 사실만 놓고 「뭐 별 것도 아니잖아…」라는 마음을 갖고 자위도 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점만 놓고 보면 확실히 일본이 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미국이 일본에 절절매며 일본 상품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등 곳곳에서 무역마찰을 일으키고 있을까. 또 일본의 근로자들은 이같은 생활수준에 어떻게 만족하고 있으며 일본의 사회적 안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한가지 통계가 최근 발표됐다.
일본 근로자들의 저축실태다. 일 총무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일 근로자의 가구당 저축액은 1천2백28만엔으로 전년보다 6.5% 늘었다. 90년의 저축증가율 5.6%보다 0.9%포인트가 증가했다.
자영업자등 일반가구의 지난해 저축은 90년보다 7.2% 증가한 2천37만엔으로 사상 처음 2천만엔대를 넘어섰다.
좁은 집에서 저축하면서 열심히 사는 일본 근로자들의 이같은 생활태도가 바로 경제대국 일본을 만든 것이다. 또 근로자가 가구당 6천여만원 이상 되는 저금통장을 갖고있으니 사회적 안정을 바랄 수밖에 없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지지율이 20% 수준인데 일 자민당의 지지율은 50%를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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