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물부문 신명호씨|철강산업 이끈 "쇳물요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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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강원산업의「주물사전」신명호씨(53·포항시 해도2동109의30)는 짧은 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룬 한국 철강산업의 오늘을 빚어낸 숨은 역군 중의 한 사람이다.
지난 27년간 고철을 죽처럼 끓여 갖가지 틀에 부어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강철제품을 생산해내는데 주력해 온 그는 이제 쇳물의 색깔을 보기만 해도 꿇는 온도의 미세한 차이를 식별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
그의 주특기분야는 시뻘겋게 달궈진 강판을 용도에 맞는 철판으로 납작하게 펴주는 역할을 하는 압연기용 롤을 만드는 일이다.
76년 압연용 롤을 국내 처음 개발, 국산화에 성공한 그는 78명의 주물기능인을 이끌며 직경·무게가 최고 1m40cm·50t인 롤을 연간 1만5천여t 생산, 국내 롤 수요량의 90%이상을 충족시키고 있다.
금형에 쇳물을 주입해 필요한 철강제품을 만들어내는 그는 금형 안에서 쇳물이 굳어 원하는 모양을 갖춘 다음 금형과 매끈하게 분리될 수 있도록 하는 금형도형제를 독자적으로 개발, 주물작업의 효율성을 크게 제고시킨 장본인이다.
경북영덕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가「호구지책」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주철 분야에 뛰어든 것은 그의 나이 26세 때부터.
강원도 삼척에 소재한 강원산업에 들어가자마자 회사 내 직업훈련소에서 1년간 1천8백여 시간을 주물분야에 관해 공부하는데 주력, 이론무장을 했고 주물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내며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주경야독하는 그의 성실한 자세는 73년 강원산업에 포항주물공장이 생겨 자리를 옮긴 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실무경험과 이론으로 잘 무장된 그는 그때까지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초대형선박(20만∼30만t급)용 러더혼(뱃머리가 장애물에 부딪쳐도 파손되지 않게 하는 강철로 된 앞부분)과 배 뒷부분 프로펠러를 지탱해 주는 스턴보스 등을 국산화하는데 성공, 외화절감에도 이바지했다.
그는 또 롤 제조기술의 최첨단이랄 수 있는 원심주조기술을 국내 최초로 정착시켜 역시 제품의 품질향상·원가절감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이제 길이가 4m나 되는 롤의 금형이 주입직전 정확한 수평을 이루고 서있는지 기계보다 정확하게 맨눈으로 식별해 내는「귀신」이 됐다. 그 동안 대통령·포항시장으로부터 산업표창 등을 받고 정부가 선정한 산업명장이 되는 등 승승장구의 기능인 생활을 거듭한 그를 키운 것은 성실함·끈기 외에도 그를 강인한 쇠인 양 달구어 준 역경과 고난이었다. 주물에 관한 한 1인자의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는 고집을 갖고 있는 그는 실력연마를 위해「만년 학생」의 자세를 늦추지 않고 있는데『주물 일이 험하다고 젊은이들이 피해 가는 이때 묵묵히 일하는 후배기능인들에게 희망을 제시해 주는 선배가 되고싶다』고 했다. 부인 권수진씨(52) 사이의 4남이 모두 대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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