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광장|거추장스러운 연주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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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의 첫 공식연주는 6·25피난시절 부산의 천막강당에서 열린 제1회 이화콩쿠르였다. 연주복(?)은 엄마가 떠주신 초록스웨터에 국제시장에서 산 빨간 스커트였다. 다음 서울데뷔는 지금은 없어진 명동 시 공관에서 해군 정훈음악대(시향의 전신) 협연으로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 밑으로 교복바지를 껴입었다. 중학생에게 색동은 촌스럽게 여겨졌는지 선생님과 엄마는 아는 언니의 드레스를 빌려 입자고 달랬는데, 드레스를 입는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 절대로 안 입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후에도 한복을 즐겨 입다 유학 후부터는 쭉 서양(?)드레스였는데『옷만 요란하고 피아노는 별로야』라는 소리라도 들으면 어쩌나하는 소심증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얌전한 쪽으로 입어온 셈이다.
속으로는 남들의 화려함과 대담한 노출을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했고 작년엔 가는 나이를 먹은 배짱으로「더 늦기 전에」마음먹고 어깨 없는 드레스를 입기도 했지만….
다른 악기도 그렇지만 피아니스트는 연주 복의 제한을 받는다. 우선 연주하기가 편해야 되고 앉은 옆모습이 예쁜 것도 중요하고, 또 반주 때나 실내악 연주 땐 다른 사람들 틈에서 돋보이지 않으며 어울려야하고.
어쨌든 무대에서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이고 또 청중에 대한 예의기도 하지만 음악이 옷에 압도되어서야 하는 생각이 요즈음 음악회에서 많이 든다.
얼마 전 TV중계 음악회의드레스도 그랬다. 어깨가 무겁도록 오색구슬로 장식한, 옛 여왕의 초상화에서처럼 굉장한 것이었는데 그 프로를 보라고 전화해준 친구 왈,『이제는 가정의례준칙에 드레스의 구슬은 얼마까지만 달라고 규정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한탄했다.
그러나 같은 구슬이라도 어떤 엄마가 감을 떠다가 손수 만들고, 엷은 무늬를 따라 가슴에 가득 흰 진주를 구슬 하나 하나에 아베마리아의 기도를 담아가며 달았다는 흰 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같은 전의 머리띠에도 조촐한 구슬이 박히고 굽 낮은 구두를 신고 다소곳이 서있는 딸의 모습을 보며 그 음악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비는 마음이었다. 신수정<피아니스트·경원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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