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사회당 북한 푸대접에 “찬밥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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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일성생일 축하하러갔다 면담도 못해/핵사찰문제 꺼내자 “당신들과 상관없다”
김일성 북한주석 80회 생일을 맞아 북한을 방문했던 일본 자민당과 사회당 대표단이 16일 귀국했다. 사회당 대표단은 마치 「조공사절」같다는 비난만 들었을 뿐 별 성과없이 3박4일간의 방북일정을 끝냈다.
사회당 대표단은 이번 방북기간동안 핵사찰시기 발표,북송재일동포의 일본인처 고향방문실현,김정일 면담 등을 노렸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북한이 원자력 발전시설을 처음 일본 TV화면에 공개하고 겨우 20∼30명의 일본인처 고향방문 언질을 받아낸 것이 고작이다.
일본 언론들은 북한과 관계가 깊은 사회당이 자민당보다 더 푸대접을 받고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사회당 북한방문의 최대목표는 북한노동당과 정당레벨에서 핵사찰문제를 타결짓는 것이었다.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사회당위원장은 방북전 『김일성 주석에게 핵사찰 실시시기를 명시하라고 촉구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다나베 위원장이 이 문제를 갖고 논의한 사람은 서열이 세번째로 알려진 김용순 노동당비서였다. 김주석과 회담은 무산됐다. 금수산의사당에서 김주석이 하객들과 악수할때 선채로 몇마디 인사를 나누었을 뿐 핵문제는 끄집어 낼 기회가 없었다. 김정일과도 다음날 한두마디 말을 나눴을 뿐이다.
김용순 비서와의 회담도 몇번씩 일정을 변경한 끝에 귀국날인 16일 오전 겨우 마련됐다.
다나베 위원장은 『6월초에는 핵사찰이 실현되겠는가』고 김용순에게 묻자,김은 『핵사찰문제가 북한­일본 국교정상화교섭에서 제기될 문제가 아니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논의할 문제』라고 못박았다.
회담이 끝난후 다나베 위원장은 구체적인 사찰실시시기를 끄집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상대가 IAEA와 조정중이라고 하니 몇월 며칠에 실시하느냐고 묻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 둘러댔다.
한편 자민당 대표단의 경우 김주석개인의 생일에 우루루 몰려갔다는 점에서는 역시 꼴사나웠지만 사회당과 방북목적이 달랐고 규모도 사회당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사회당보다 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자민당 대표단은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총리와 가네마루 신(금환신) 부총재의 친서전달과 생일축하가 방문목적이었다. 자민당대표단은 핵문제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적은 친서를 전달은 했으나,생일축하에 왔다는 이유로 북한지도부와 만났을 때도 핵문제는 아예 끄집어내지 않았다.
북한방문길에 동행한 일본언론들은 자민당이 여유를 보인데 반해 사회당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자민당대표단은 도착일인 13일 김용순과 만났으며,사회당보다 앞서 14일 김주석과도 만났다.
이같은 예는 과거 중국­일본 국교정상화과정에서도 있었다. 72년 중­일 국교정상화전 일본의 대 중국창구는 사회당과 공명당이었다.
그러나 정작 국교정상화의 과실을 따먹은 것은 자민당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총리였고,사회·공명당은 찬밥신세가 되고 말았다.
일본 정가에서는 이번 방북결과를 놓고 북한이 지난 90년 노동·자민·사회당 3당 공동성명을 계기로 일본의 접촉창구를 사회당에서 자민당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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