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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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 나무에게 가는 길은

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하니?

마침내

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하니?

한 나무의 아름다움은

다른 나무의 아름다움과 너무 비슷해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푸른 흔들림

너는 잠시

누구의 그림자니?


어쩌면… 그래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내내 무심했을 테니, 어쩌면… 그래요…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이 사랑하는 풍경들을 나도 사랑하게 된 것처럼, 어쩌면… 그래요… 당신에게 가는 길이 당신이 앉은 곳 너머까지 푸른 초롱을 들게 하였어요. 당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 있게 된 후 당신 너머에 있는 남루에서도 아름다운 처마를 볼 수 있었어요. 봄숲이 가을숲처럼, 여름숲이 순간이듯, 지난겨울의 숲이 봄숲인 당신이었어요. 고마워요, 내 푸른 젖은 흔들림들, 당신의 끝을 통해 당신의 처음을 향해 간 그 모든 푸른 샛길들.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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