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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의역사를바꾼명차] 지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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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년 만인 1940년, 미 육군은 나치의 우수한 기동력에 밀려 당황하고 있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히틀러가 폴크스바겐을 개조한 소형 4WD 차량을 전장에 대거 투입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다급해진 미 국방성은 미국 내 자동차 메이커에 전장의 험한 지역을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는 0.25t급 소형 군용차 개발을 의뢰했다. 그 결과 미국의 자동차업체인 밴텀은 상자형 소형 4WD를 가장 먼저 내놓아 낙찰됐다. 하지만 밴텀사는 도산 직전이라 생산 능력이 없어 생산에는 윌리스.포드사 등과 함께 참여했다.

41년부터 미군에 납품되기 시작한 이 꼬마 군용차는 제2차 세계대전 중 60여 만 대가 생산됐고, 그 민첩하고 탁월한 주파 성능 때문에 전쟁의 필수장비로 뿌리를 내리면서 군용차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 차종은 미군의 현 소형 차종인 '허머'까지 네 세대를 내려오면서 속전속결이 절대 필요한 전장의 차로 맹활약하고 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민간용 자동차에도 파급돼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4WD 차라는 새로운 자동차 패턴을 만들었다. RV(Recreational Vehicle)와 SUV(Sport Utility Vehicle) 시대를 개막한 것이다.

이 차종이 '지프(Jeep)'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미 국방성은 41년 이 소형 군용 4WD를 전장에 투입하기 위해 혹독한 테스트를 했다. 밴텀의 4WD는 밴텀버그, 포드 차는 GP(General Purpose)로 통했다. 반면 윌리스의 차에 '지프(Jeep)'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은 좀 독특하다. 당시 윌리스의 테스트 드라이버인 하우스먼이 지은 이름이 그대로 굳은 것이다. 그해 봄 미국 신문기자들 앞에서 하우스먼은 윌리스의 차를 시범운전하게 됐다. 이때 워싱턴 데일리 뉴스의 한 여기자가 차의 이름을 묻자 하우스먼은 서슴없이 '지프'라 했다. 하우스먼은 또 백악관 계단을 오르내리는 시범주행을 할 때도 신문.방송 기자들에게 "차의 이름은 지프"라고 했다. 이 차는 곧 사진과 함께 지프라는 이름을 달고 신문에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하우스먼이 왜 '지프'라고 명명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 이름을 듣고 곧바로 인기 만화였던 뽀빠이를 연상했다. 지프는 이 만화에서 4차원과 3차원을 오가며 뽀빠이와 그의 애인 올리브를 위험에서 구해 주는 신비의 만능동물로 등장한 캐릭터다. 한편 포드는 자신들의 신형 군용차를 지피(GP)라고 불렀다. 그러나 공장 종업원들이 이 차를 발음이 비슷한 '지프'라고 부르면서 이 이름은 고유명사처럼 내려오게 된 것이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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