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가 면도기 옆에 전시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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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다. 여성 고객을 알지 못하면 결코 마케팅에서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의사 결정권자들은 여전히 여성의 힘을 느끼지 못하거나 굳이 외면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호부터 여성 마케팅 전문가인 김미경 W-insights 대표의 글을 격주로 연재한다. 그는 탁월한 감각과 깜짝 놀랄 시각으로 여성 마케팅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들의 입으로부터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는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여성 고객의 중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로 동의하고 있지만 이것을 제품과 서비스의 기획에서부터 프로모션에 실질적으로 도입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치약, 화장품, 아이들 용품 등 오랜 세월을 거쳐 여자의 파워가 입증된 저관여 제품 시장을 제외하고, 과거 남성의 선택영역으로 고집돼 온 고관여 제품 시장(자동차·컴퓨터·디지털카메라·아파트·금융)은 여전히 여성을 결정적인 구매 선택권자로 확정짓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독자들에게 물어보자. 과거 20년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는 누구의 영역이었을까? 아버지였다. 엄마는 아버지의 전유물이었던 카메라 근처에도 못 갔다.

“엄마는 그런 거 몰라. 네 아버지한테 가서 물어봐.” 간단한 필름 갈아끼우는 과정조차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카메라는 당연히 거의 면도기 수준의 남성 제품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카메라를 가장 갖고 싶어하는 사람을 분류해보면 연령대로는 10대, 성별로는 여학생들이다. 이미 독자들은 숱한 괴롭힘을 딸들로부터 당해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중간고사가 시작되면 ‘평균 5점 오르면 MP3, 10점 오르면 디카’라며 아이들은 부모와 거래를 시작한다.

매일같이 디지털카메라를 끼고 자아 성취까지 느끼고 사는 딸들이 이 시장을 점령해 버린 지금 우리의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어떠한가? 고객이 분명 아버지에게서 딸들의 시장으로 전환된 것을 알고는 있을까? 안다면 백화점으로 가보자. 6층쯤으로 올라가면 소형가전 코너에 아버지가 쓰는 면도기 옆에 디지털카메라가 나란히 전시되고 있다. 필자가 백화점 마케팅 전문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디카는 소형가전으로 분류되고, 20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고 한다.

딸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하기에 매우 어려운 장소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의 분석은 아직도 제품에 대한 마지막 의사 결정권자인 임원들이 카메라는 아버지 것이라는 과거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 결정의 정서적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아무리 노트북을 쓰는 여성이 늘어나도 그 무식하기 짝이 없는 노트북 가방에 여성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 불만을 터뜨리는지 듣지 않는다.

여성 운전자가 35%를 육박하며 남편보다 돈 잘 버는 여자가 하루하루 늘어가는 오늘도 여자는 그저 다루기 편한 자그마한 소형차를 선호할 것이라고 믿는다. 집안 재테크는 아내가 남편보다 더 선수급인 상황에서, 은행 고객의 10명 중 8명이 여자인 것을 뻔히 보면서도 ‘집문서는 남편 명의로 남편의 서랍 안에 있다’라는 추억에 사로잡혀 금융에서 여성은 여전히 찬밥 취급을 한다.

여성의 구매 파워는 이제 한계 영역이 없다. 과거 남성의 구매 결정 영역을 뛰어넘어 ‘거침없이 하이 점프’를 하고 있는 여성 고객을 잡지 않는다면 마케팅의 미래는 없다. 그래서 세계적인 경영학자 톰피터스는 오늘도 경고한다. “여자를 모르면 돈 벌 생각을 접어라.”

김미경

현 직 : W-insights 대표 (여성 마케팅 리서치 &컨설팅 전문회사)
www. w-insights.co.kr / 02-557-0783 / 011-311-0783
저 서 :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는 여성 마케팅』 (2005년),
『황금사과』 (2006년)
방 송 : 현재 SBS 103.5 ‘김미경의 행복 레시피’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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