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감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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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건강한 사람이 자기 혈액을 다른 사람에게 수혈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헌혈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중 국제적십자사가 수많은 전상자들을 돌보기 위해 헌혈활동을 벌인 것이 최초로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6·25동란 종전직전인 52년 해군본부가 혈액고를 설치하고 헌혈운동을 벌인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70년대초까지만 해도 헌혈운동은 널리 확산되지 못해 매혈이 성행했다. 피의 확보량은 절대부족인데 그 수요는 더욱더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소설들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매혈하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 영양상태가 극히 불량하거나 건강을 해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피가 환자들에게 수혈됐을때 환자들을 살려내기는 커녕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 십상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처럼 비인도적이고 비의학적인 매혈행위가 법에 의해 금지되기 시작한 것이 74년부터였고 혈액관리법에 따라 설치된 대한혈액관리협회가 적극적인 헌혈운동을 전개한 끝에 혈액수요의 전량을 헌혈로 확보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헌혈되는 혈액의 관리체계에 문제가 많아 혈액용기가 오염되는등 대형혈액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헌혈운동은 다시금 제동이 걸렸다. 혈액부족이 또다시 사회문제화하자 등장한 것이 헌혈자들에게 여러가지 혜택을 주어 헌혈을 권유하는 제도다. 예비군의 헌혈도 그중의 하나다.
이번 예비군훈련장에서 헌혈된 에이즈감염 혈액을 수혈받은 청년이 자살한 사건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에이즈 항체가 인체안에 형성되려면 최소 6주에서 최고 2년까지 걸리기 때문에 이 기간중 헌혈하게 되면 항체 양성반응을 나타나지 않아 에이즈감염 사실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점에서는 혈액관리당국에 그 책임을 묻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병을 낫기 위해 수혈받았다가 엉뚱하게 에이즈 환자가 된 사람들은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혹떼러 갔다 혹붙인 격」이요,「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셈이다.<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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