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盧측, 고백은커녕 입막음만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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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내막이 전모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정신적 여당'이라는 열린우리당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당장 당을 해산하라"고 거칠게 몰아붙이면서도 스스로는 전혀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십보와 백보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큰 도둑'과 '작은 도둑'도 모두 도둑일 뿐이다. 물론 한나라당은 검찰 수사의 형평성을 문제삼을 자격도 없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손가락질하는 것도 꼴불견이다.

노무현.이회창 후보 어느 쪽도 선거비용 한도액을 훌쩍 넘겨 대선을 치렀을 것이라는 건 상식적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대선자금의 명세를 스스로 밝힐 낌새조차 없다. 오히려 고백하는 의원의 입을 막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제 열린우리당 원내 수석부대표 김덕배 의원은 의원총회장에서 "대선 때 지구당 통장으로 7천만~8천만원이 들어왔다"고 했다가 '5천7백50만원''3천만원'으로 계속 말을 바꿔야 했다. 이 액수가 2백27개 지구당에 지원됐다면 줄잡아 1백50억원 이상이란 얘긴데, "지구당 총 지원 액수는 69억원"이란 선대위 총무본부장 이상수 의원의 주장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침묵하고 있고 盧캠프의 대선자금 수사 내용은 나오는 게 없으니 오해가 쌓인다. "검찰이 대기업의 다른 약점을 잡아 한나라당 대선자금만 불게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닌가. 취약점 투성이인 재벌들이 盧캠프에 제공한 대선자금을 순순히 불고서 어떻게 현 정권 4년여를 견뎌낼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정황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은 언제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것인가. 한나라당이 고해성사할 기회를 외면했다가 국민의 분노와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집권하고 있다는 이점 때문에 검찰의 수사 발표 순서나 수사 강도에서 덕을 볼 심산이라면 지금이라도 새 정치의 깃발을 내리는 게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