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문제 남의 일 아니다/정규웅(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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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년을 2,3년 앞둔 한 직업공무원이 곧 결혼할 외아들에게 말했다.
『네 생각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우리 재산이라고는 이 집 한채와 내 퇴직금밖엔 없다. 내 퇴직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전세집을 마련해 줄테니 잘살아 보도록 해라.』
아들이 놀라 이의를 제기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제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저 하나뿐인데 제가 결혼해서 부모님을 모시는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이 집은 저희가 함께 살아도 별로 옹색하지 않을텐데요.』
○확산되는 분가 풍조
아버지가 뭔가를 생각하다 타이르듯 말했다.
『네 심정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나이들어서까지 너희들에게 짐이 되긴 싫다. 우리 내외 죽은 다음에야 모든 것 너희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엔 자유롭고 싶다.』
최근 당사자에게서 직접 들은 부자간의 대화내용이다. 비단 이 경우뿐만 아니라 노년기를 앞둔 장년층에게 출가하는 자녀들을 분가시키려는 풍조는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옛날에 비해 평균수명이 훨씬 늘어나고,그에 따라 노후활동의 폭이 넓어진 탓도 있겠지만 50대 이후의 장년들 가운데 살아생전 모든 것을 자녀에게 맡기고 노후생활을 의지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모든 재산을 자식들에게 분배하고 자신은 돈걱정·살림걱정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노후생활을 즐기고자 했던 것이 우리네의 전통적인 관습이었다. 자식들에게 분배한 재산이 아직은 「내 것」일 수 있고,최소한 「우리 것」임에 틀림없다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든 적든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들의 생각이 부모들과 똑같을 수는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가령 자식들이 할일없이 소일하는 부모에게 용돈을 준다 했을때,부모는 「내돈 내가 가져간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자식들은 「노인네들이 쓸데없이 낭비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누적되면 부모는 아무리 많은 돈을 받아도 적다고 느끼고,자식은 아무리 적은 돈을 줘도 많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부모와 자식간이 소원해지는 까닭이 비단 이같이 돈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부모를 모신다」는 의미가 경제적인 측면과 긴밀하게 얽혀있음은 틀림없을 것 같다.
○돈이 갈등의 주원인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30년 나까이 봉직해온 대기업의 한 중견간부는 성장한 자녀들이 자신의 재산규모를 알아내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했다. 슬하에 아들 셋을 둔 그는 2남까지 분가시키고 대학재학중인 막내아들과 살고 있는데 분가한 아들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신의 재산을 넘본다는 것이다. 자신의 노후생활을 감안해 상당액의 「남모르는」 재산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아들들에게 넘겨주면 자신은 「거지」가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사람의 의식속에는 재산을 모두 자식들에게 물려준 다음의 자신의 노후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수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호령하던 당당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자식들에게 용돈 몇푼을 구걸해야 하는 딱한 모습을 상상하리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에 일어난 몇몇 노인들의 자살사건은 노인들이나,이제 곧 노인이 될 장년층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노인들의 자살에는 온갖 이유들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그 가운데 자식을 여럿 두고 그 자식들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 그 노부모의 자살은 늙는다는 것이 곧 비극이란 느낌을 갖게 한다. 늙는다는 것 자체가 외로움이기는 하지만 노인들이 갖는 소외감은 대개의 경우 젊은이들,특히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비롯한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하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한다. 자식이 늙은 부모를 짐으로 생각해 모시기를 꺼린다든지,부모가 이를 지레 겁먹고 자녀를 「남」으로 생각한다든지 하는 것은 그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다.
부모·자식간에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발동하는 사회는 분명 올바른 사회라 할 수 없다. 특히 자식들의 입장에서 부모가 짐스럽게 느껴진다면 조만간 닥쳐올 그 자신의 노후를 생각해야 한다.
○누구나 늙는건 진리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늙는다는 것은 죽음과 함께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진리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고,그것을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거기에도 있다. 고려장의 설화는 그와 같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명징하게 깨우치고 있다. 조선조 중기의 대문장가인 정철은 그의 시조에서 이렇게 훈계한바 있다.
『어버이 살았은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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