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가는 아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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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네가 짐을 싸서 청주의 대학교로 떠난 지도 꽤 됐다. 혼자서 식구들과 떨어질 것을 생각해서인지 그 즈음 너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었다.
기쁨에 들떠 그랬을까. 외로움을 미리 걱정해서였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망설이다 바쁜 척 하며 항상 그랬듯이 잔소리를 시작했다. 먼저 하숙집 아주머니께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 잊지 말고, 양말·남방셔츠·속옷 등 빠짐없이 다 챙겼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고, 학교에 낼 서류는 준비됐는지 자세히 보고, 고속버스 표는 겉주머니에 잘 넣었는지 확인하고, 공부에 바쁘다는 핑계로 식사시간 늦지 말고, 남보다 2∼3분 빨리 가서 하숙집 아주머니 도와드리고…등. 속이 깊고 너그러운 너는 엄마의 잔소리가 즐겁다(?)는 듯「보약이 따로 있나, 이게 바로 보약(?)」이라며 나의 두 손을 꼭 잡고서 웃어 넘겼다. 고맙고 대견했다.
아들아. 고3 한해가 너무 힘들고 길다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지금은 추억쯤으로,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쯤으로 잊어서는 안 된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이 세상에서 마음과 몸이 제일 튼튼하다고 자랑하고 싶다.
그 흔한 과외도 싫다하고「고3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냐」며「집안식구들을 긴장시키는 친구들을 보면 이상하다」고 오히려 엄마를 위로해 주었던 너. 도시락두개를 싸주면서 반찬이 맛없으면 학교 근처 식당에서 밥 사먹으라고 준 돈을 차곡차곡 모아 간혹 엄마가 쩔쩔맬 때 얼른 주었던 너. 그런 네가 대학생이 되어 너의 갈 길을 찾아 떠났다고 생각하니 가슴 벅차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가는 길이 험하고 외로울 때 엄마의 두 손을 꼭 잡던 그때의 마음을 잊지 말고 용기를 내다오.
우리 송씨 집안의 대들보니 모든 이에게 너그러움과 용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던 할머니의 말씀도 깊이 새길 줄 아는 아들이 되기를 부탁하고 싶구나. 청주에서의 너의 4년이 즐겁고 보람있는 나날이 되기를 엄마는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서울 시신림11동1475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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