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라도 열어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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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당의 국회상임위 소집요구는 민자당이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상임위 정도라면 야당의 소집이유가 타당하고 여당의 거부명분에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선거도 끝났으니 국회에서 군부재자 투표 부정,안기부의 흑색선전 가담등 드러난 선거후유증을 정치적으로 마무리하고,민생등 각종 현안을 다루자는 민주·국민당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다. 총선에서 낙선한 의원이 많은데 새 국회구성전에 국회를 본격적으로 열기 어렵다는 여당 주장에도 일리는 있으나 꼭 필요한 소수의 상임위라면 그런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될 될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공언한 지자제단체장선거 연기문제의 법적 뒷받침을 위해서도 어느정도의 국회논의는 불가피하다. 이 문제를 아무런 사전 절충없이 5월30일 이후 임기가 시작되는 14대 국회에서 다룰 경우 민자당이 무소속을 대거 영입,그들 의도대로 법을 고치지 않는한 6월30일까지로 규정된 실시시한을 지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법률을 어겼다는 이유로 탄핵소추 시비에 휘말릴 수 있으며 정치전반이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닥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를 도외시한채 민자당이 당내 대권경쟁 때문에 국회를 열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선거가 아직도 멀었는데 집권당이 온통 대권에 매달려 국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총선민의에도 맞지 않는다.
민자당은 당내 경선도 하고 상임위 정도는 열어 국정심의도 등한히 하지 않는 집권당으로서의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야당이 제기하는 쟁점들이 여당엔 곤혹스럽고 껄끄럽더라도 묵살만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군부재자투표 부정과 안기부원의 선거공작은 민자당의 패인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국방부·검찰의 조사만으로는 의혹을 말끔히 씻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국회를 통해 전말을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후유증의 최소화에 도움이 된다.
지난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물가앙등,무역적자,중소기업도산등 민생·경제문제를 총선이 끝났다하여 국회가 2개월이상 수수방관하는 것 역시 보기에 좋지 않다. 총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국회가 관심을 표시하는 것이 국민정서에 맞는다.
물론 야당의 상임위소집 요구 이면엔 민자당 대권경쟁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대통령선거전을 겨냥한 공세의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설사 그런 의도가 있더라도 그것이 민자당의 거부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튼 국회가 당리당략때문에 장기간 겉도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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