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절도단의 「천직」(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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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열쇠 좀 바꾼것 가지고 사람을 무슨 큰 도둑으로 몰고 그래요.』
『아내가 준 수표가 훔친 것인줄은 몰랐습니다. 나중에 조심해서 사용해야될 것이라 말하긴 했습니다만.』
1일 오전 8시 서울 방배경찰서 형사계.
아내는 목욕탕안에서 열쇠를 빼내 금품을 훔치고 남편은 이를 처리해오던 「부부절도단」이 애써 변명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어쩐지 힘이 없어 보였다.
부인 정모씨(33)는 지난달 21일 오후 2시쯤 서울 사당동 Y여성사우나에서 손님 공모씨(32)가 머리를 감는 사이 옷장열쇠를 몰래 빼내 1백만원짜리 수표등 9백여만원을 훔쳤다.
정씨는 이어 남편 박모씨(41·무직)에게 수표처리를 부탁했고 박씨는 이를 위해 D건설 사업관리부장 직인과 신분증까지 위조,수표에 이서했다가 수표를 추적한 경찰에 붙잡혔다.
아내 정씨는 『처음 도둑질을 한 것은 지난해 6월』이라고 주장했지만 조회결과 73년부터 절도전과 8범에다 사기혐의로 수배중임이 드러났다. 남편 박씨도 출소한지 몇달 되지 않은 전문가임이 밝혀지자 이들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생활비를 벌기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손쉬웠어요.』
이들이 이같은 수법으로 목욕탕에서 훔쳐온 금품액수는 자백한 것만 해도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30여차례 8천만원 상당. 현장검증을 나가면서 이들 부부는 『어디 한두번 겪는 일이냐』는 표정으로 오히려 서로를 다독거려 경찰관들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도 했다.
『아직 젊었으니 열심히 일하면 굶어죽기야 하겠어요. 온세상이 다쉽게 벌고 쉽게 쓰려고만 하니 원….』
나이가 지긋한 담당형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거짓말과 도둑질로 맺어진 이들의 비뚤어진 부부애의 대가는 결국 차가운 철창과 쇠고랑뿐이었다.<이은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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