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혁시시각각

우린 교육 대통령이 보고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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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지만 집권 마지막 해인 2002년, DJ정부는 암암리에 '평준화 폐지'를 추진했다. DJ는 핵심 비서관에게 "이대로는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없으니 평준화의 대안을 마련하라"며 "그걸 위해서라면 한나라당과도 상의하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가 열매를 맺진 못했다. "왜?"라고 묻는다면 "정권 말기였다"는 답변밖에는 못 하겠다. 평준화를 깨는 건 '레임 덕(Lame duck)' 대통령이 하기엔 버거운 과제였다. DJ의 지시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채 잊혀졌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교육관이 뚜렷했다. TV 토론회에서 "평준화는 못 깬다"고 강조했다. 권력의 힘은 강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교육 정책은 '뒤로 돌아'했다. DJ 때 평준화 보완책으로 인정됐던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등은 된서리를 맞았다. 교육 이민과 기러기 가족은 가파르게 늘고, 사교육 시장도 몇 년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노 정부의 교육정책은 요지부동이었다.

요즘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키려고 온갖 반대를 무릅쓴 노 대통령이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왜 저럴까"하는 의문이 든다. 둘 다 본질은 똑같다. 당장은 괴롭고 힘들어도, 경쟁 시스템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대신 정부는 경쟁에서 낙오하고 처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은 같은데 왜 대응은 딴판일까?

노 대통령의 맘속을 모르니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평준화 집착은 노 대통령의 성장사와 관계가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노 대통령은 상고를 졸업하고 한때 막노동도 하며 방황했다. 그러다 독한 맘 먹고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만 해도 극소수만 뽑았던 사시는 거의 KS(경기고-서울대) 같은 명문고.명문대 출신들의 독무대였다. 어쩌면 노 대통령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사시에 합격했어도, 지방 상고 출신에게는 열리지 않았던 '그들만의 학벌 세계'에 반감을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그런 처지였다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개인적 경험 때문이든, 아니면 노 대통령의 철학이 원래부터 '평준화=경쟁력 향상'이었든 이젠 별 의미도 없다. 21세기의 경쟁은 범지구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경기고나 서울대가 문제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금이 적기다. 그러려면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공약을 걸게 해야 한다.

일부에선 '자기 새끼만 챙기는 학부모의 이기심'과 '교사들의 무성의'를 지적한다. 다 맞다. 하지만 그런 윤리적인 촉구로 문제를 해결하기엔 병이 너무 깊다.

내년 대선 레이스는 이제 막 시작이다. 선두 주자는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다. 두 정치인은 '경부 운하'와 '열차 페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아쉽다. 온 국민은 교육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운하'나 '페리'도 좋지만 아무래도 먼 나라 얘기 같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이 되고 싶은 정치인들에게 당부한다. 미래에 뭘 해주는 것도 좋지만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 교육을 어찌할지 대안을 내란 말이다. 교육 문제 해결하면 누구든 대한민국 대통령 될 자격 충분하다. 우린 교육을 고민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