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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히말라야 탐사 #12신] 캉리갈포에 장마가 오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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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아름다운 라워 호수(然烏, 3850m)를 내달린다. 차창너머 옥빛 머금은 호수는 거대한 산맥의 반영(反映)을 그대로 담아낸다. 아마도 동부 티베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탐사대는 미투이(米堆)빙하 탐사를 마치고 3월31일(현지시간) 캉리갈포(崗日嘎布)산군을 대표하는 빙하인 라구(来古)빙하의 탐사를 위해 라워로 차를 몰았다.


라워호수는 작은 섬을 호수중간에 만들어 놓았다. 코발트 호수 빛이 편안하다. [사진=스즈키 히로코]

이곳은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할 당시 가장 격렬하게 끝까지 저항한 용감한 캉바족의 토지(土地)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30분가량 아름다운 라워 호수를 달린 우리는 호수 한편에 자리 잡은 한적하고 값싼 숙소에 행낭을 풀었다. 4000m에 육박하는 고도만 아니면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었다. 잠시 오후 햇살에 몸을 맡기고 휴식을 취했다.


라구빙하에 반영된 5000m급 연봉들 [사진=스즈키 히로코]

“이곳이 마지막 탐사네요!”
“이제 돌아가야지.”

신준식씨는 이곳의 탐사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간 40여 일간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힘들게 이곳까지 왔는데 먼저 보내는 아쉬움이 한 발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유종의 미를 위해 우리는 다음날 거친 라구빙하를 위해 출발을 서둘렀다.

차는 라워를 지나자마자 촨장공루(川藏共路)에서 우측의 비포장도로로 이어진 작은 샛길로 들어선다. 첫 구비를 돌자 시야가 확 트이기 시작한다. 너른 개활지 주위로 인상적인 5000m급 산들이 도열(桃列)하듯 서 있다. 이곳 라구빙하는 캉리갈포산군의 거의 동쪽 끝에 해당한다. 라워 동쪽은 자유우현의 헝단산맥(橫斷山脈)과 경계를 이루는 상곡(桑曲, 브라마투라강의 상류인 로히트 강 상류)부근 이다.

이렇듯 캉리갈포산군은 히말라야산맥의 바로 동쪽에서 시작해 남동쪽으로 사선을 그리며 뻗어 내린 산맥이다. 대부분의 트랜스 히말라야산맥이 히말라야라는 대 장벽 뒤에 위치하는 것과 비교되는 위치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이곳은 다른 트랜스 히말라야와 달리 계절풍(季節風)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이유는 이렇다. 한여름 벵골 만과 인도양에서 데워진 공기는 많은 비를 뿌리며 인도대륙을 달려 히말라야라는 대 장벽에 부딪친다. 이런 이유로 히말라야를 끼고 있는 네팔, 인도, 부탄등의 나라에서 여름시즌에 등반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여름 장마철을 피해 봄, 가을 그리고 겨울에 등반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히말라야 뒤편에 위치한 트랜스 히말라야(Trans Himalaya)산맥은 몬순(Monsoon, 특히 여름철 인도양에서 남서쪽으로 부는 계절풍)의 영향에서 비교적 벗어나있다. 몬순의 영향에서 벗어난 순서대로 보면 텐산산맥(天山山脈), 쿤룬산맥(崑崙山脈), 니엔칭탕구라산맥(念靑唐古拉山脈)의 순이다. 이 산맥들은 히말라야가 몬순으로부터 장벽 역할을 해 여름철에도 등반이 가능하다. 하지만 높은 위도로 인해 겨울철에는 등반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쿤룬산맥과 텐산산맥의 서부에 사막기후가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하지만 히말라야 바로 동쪽에 위치한 캉리갈포 산군 앞에는 몬순구름으로부터 장벽 역할을 할 대 산맥이 없다.

또 캉리갈포산맥 바로 동쪽에는 ‘세 개의 큰 협곡(great three gorges)'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헝단산맥이라 불리는 곳이다. 여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등에 많은 비를 뿌리는 몬순구름과 합세해 캉리갈포산군에는 여름철 장마가 시작된다. 6월 시작된 장마는 늦게는 8월말 까지 계속된다. 이렇듯 장마 비는 낮은 위도의 이 지역에 많은 아열대수림을 선사했다.

라구마을 어린이들과 함께한 히로코 [사진=신준식 기자]

두 시간을 달린 차는 라구호수에 도착했다. 캉리갈포산군의 최대면적의 빙하에 도착한 것이다. 넓고 느릿한 빙하의 흐름과 대 빙하가 바로 호수로 떨어지는 특이한 지형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파타고니아와 많이 닮아 있었다. 이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일본산악회 후쿠오카지부의 탐사다. 이 지부에서는 2000년에서 2004년까지 4차례 걸쳐 조사대를 캉리갈포산군에 파견했다. 이 탐사대는 캉리갈포산군 전역에 걸쳐 산이름 조사와 산의 위치 등 종합적 조사를 했다. 지금까지 40개 봉우리의 산이름이 확인되고 위치가 확정되었다.

우리는 일본대의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4년에 걸친 탐사를 다 쫒아 갈수는 없었다. 시각을 달리해야했다. 먼저 그들의 탐사에 오류가 있었는지 확인했다. 특히 받침의 발음이 어려운 일본어의 특성상 현지인과의 산명(山名)대한 발음의 차이가 있는지에 주목했다. 또 산의 표고차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3500m내외인 라구빙하의 바닥으로부터 산정에 이르는 표고차와 벽의 각도는 향후 이 지역을 향한 한국등반대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는 제모송구(Gemosongu, 6450m)동벽과 하모콩가(Hamo-Kongga, 6260m)북벽등 라구빙하의 5개 6000m급 봉우리 사진을 모두 찍었다. 하지만 대규모로 4년간 진행된 일본의 탐사와 비교해 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이 라구빙하 주위에 형성된 더 많은 6000m급 봉우리들의 탐사에 나서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었지만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라워로 향하는 차안에서 시선이 자꾸 라구빙하 너머에 머무는 것은 아마도 아쉬운 때문일 것이다.

“후배들이 있잖아.”
마음속으로 이렇게 위안을 삼으며 조만간 한국대의 광범위한 탐사가 이 지역에서 일어나길 기대하며 우리는 캉리갈포산군의 모든 탐사를 마쳤다.

흙을 이용해 집을 지은 라구마을의 전경 [사진=신준식 기자]

“시원섭섭하다.”
히로코의 말대로 반반의 마음이 고개를 든다. 이제 우리는 행정구역상 티베트에서의 모든 탐사를 마쳤다. 계획상으로는 원난성(雲南省)으로 향해야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는 길이 너무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탐사대는 쓰촨성의 청두(成都)에 들러 전열을 가다듬은 후 원난성의 5개의 대하(大河)가 있는 곳. 그리고 캉바티베트의 성산(聖山)중의 성산 메일리수에산(Meili Xueshan, 6740m)으로 향하기로 했다. 우리는 4월1일 라워를 출발해 삼 일간 1200km를 먼지 속에 덜컹거린 후 마침내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다시 청두에 도착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지나고나니 의미 있는 탐사였던 것 같네.”

4월5일 지난 40여 일간의 탐사기간 동안 심한 고소증으로 균형 감각이 상실된 상황에서도 카메라만은 놓지 않았던 신준식씨가 인천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다 잘해드리지 못한 미안함만 마음에 남는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히로코와 둘이 된 탐사대는 4월7일 원난성으로 향하는 기차에 다시 올랐다. 4월6일 아침 차창 밖으로 ‘구름의 남쪽’ 원난성이 저 멀리 아른거린다.

글=임성묵(월간 사람과산) 사진=신준식, 스즈키 히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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