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연초록의 이삿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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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연초록의 이삿날'- 안도현(1961~ )

연초록을 받쳐들고 선 저 느티나무들 참 장하다

산등성이로 자꾸 연초록을 밀어올린다

옮기는 팔뚝과 또 넘겨받는 팔뚝의 뻣센 힘줄들이 다 보인다

여기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더 가져가겠다는 뜻 없다

저수지에도 몇 국자씩이나 퍼주는 것 보기 참 좋다


그 아지매들 꼭 저랬다. 거친 얼굴에 연한 화장이 싱그럽던 아지매들. 팔뚝만큼은 한 아름 튼실하여서 새둥지 여럿 앉힐 만했다. 보름에 한 번 엄마 없는 아이들 엄마 해 주러 오는 아지매들. 시장통 장사 하루 벌이 버겁지만 날마다 아이들이 눈에 삼삼하다는 아지매들. 화장 한번 안 하고 살다가도 보름에 한 번 예쁜 엄마 돼 주러 분 바르고 온다는 스무 살 새댁 같은 쉰 살 아지매들. 이불 빨래 팍팍 이겨 빠는 발목에 연초록이 돋아, 아지매들 온 날은 이웃 싸전에도 자전거포에도 싱싱한 연둣빛이 번지곤 했다.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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