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펀드는 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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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소규모 펀드의 통폐합이 본격화하고 있다. 감독당국의 '펀드 대형화' 방침에 따른 것이다. 펀드 규모가 작으면 운용 효율이 떨어져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점에서 펀드 대형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통폐합 수수료가 판매사별로 다른 데다 통폐합에 따른 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투자자 불편과 혼란이 예상된다.

◆나도 모르게 내 펀드가 정리 대상=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통폐합 대상인 수탁액 100억원 미만 펀드 수는 전체(8239개)의 55.7%다. 수탁액은 13조1000억원으로 전체의(240조원) 5.4%다. 이 중 130개가량은 가명 펀드 또는 투자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펀드다.

문제는 이런 펀드에 가입하고 주소가 바뀌었는데도 판매사에 이를 알리지 않은 경우다. 펀드가 통폐합되면 펀드 투자금은 연 2~4%의 고객예수금 계좌로 바뀌어 운용된다. 투자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돈이 엉뚱한 데 투자되는 셈이다.

또 금융실명제 실시(1993년) 이전에 가입된 가명 펀드나 세제 혜택을 받았던 펀드 등에 대한 통폐합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분쟁의 불씨로 지적된다. 16일 업계 최초로 소규모 펀드를 통합한 대한투신운용은 수탁액 100억원 미만 펀드 310개 중 법률적으로 분쟁의 소지가 큰 펀드를 제외한 122개(842억원)를 일괄 해지했다. 이 중 투자자와 협의가 끝난 313억원은 다른 펀드 등으로 옮겨갔지만 나머지 529억원은 고객예수금 계좌로 넘어갔다.

대한투신운용 이주안 마케팅본부장은 "같은 운용사의 다른 펀드 상품으로 갈아탈 경우엔 수수료가 붙지 않는다"며 "펀드를 갈아탈지, 아니면 해약할지는 고객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추가 수수료를 물지 않는다면 같은 회사의 대형 펀드로 갈아타는 게 유리하다"며 "그러나 충분한 수익이 났다고 판단되면 환매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통폐합은 곤란"=한국투신운용의 경우 100억원 미만 펀드 300여 개를 정리한다는 방침은 세웠지만 아직 정리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세금 문제와 가명 펀드, 연락 두절 투자자 처리 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금감위가 펀드 통폐합 관련 규정을 마무리하는 6월 말 이후 본격 정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이유로 업계 관계자는 "오늘 첫 소형 펀드 통폐합이 이뤄졌지만 본격화는 6월 말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소규모 펀드 통폐합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100억원 미만 펀드를 일괄 통폐합할 경우 소형 운용사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수익률이 높고 운용이 잘되는데도 규모가 작다고 무조건 통폐합하는 것은 고객의 권리를 빼앗는 행위"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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