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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워싱턴 케네디 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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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9월 9일 뉴욕 타임스 1면에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조셉 케네디 부인을 포옹하는 사진이 크게 실렸다. 번스타인은 1969년까지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지낸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겸 지휘자. 케네디 부인은 8년전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어머니였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오늘 밤 미국의 수도는 7000만 달러짜리 존 F 케네디 아트센터의 화려한 개관과 함께 드디어 문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은 1번 박스석에 부인 조앤과 함께 앉았다. 이 박스석에는 작곡가 애런 코플랜드, 워싱턴 시장 월터 워싱턴이 함께 자리했다."

번스타인'미사'초연으로 개막

워싱턴 케네디 센터는 1971년 9월 8일 오페라 극장에서 번스타인이 작곡한 '미사'의 세계 초연으로 개관 공연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번스타인에게 이 작품을 위촉한 자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여사는 1주일전에 개막 공연 불참을 통보해왔다. 그는 3년전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자클린 여사 대신 시어머니인 조셉 케네디 부인이 이날 행사의 '퍼스트 레이디' 역을 맡은 것이다.

'미사'는 오케스트라, 독창자, 합창단, 무용단,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작품으로 한 편의 오페라를 방불케 했다. 케네디 센터 개관을 축하하는 동시에 케네디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작품이었다. 번스타인이 직접 지휘봉을 잡았다. 연주가 끝난 후 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번스타인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다. 일부 관객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닉슨 대통령 부부는 케네디 일가를 VIP로 배려하기 위해 개막공연에는 참석하지 않고 이튿날 콘서트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탈 도라티가 지휘하는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의 '헌당식 서곡'에 이어 모차르트의'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G장조', 스트라빈스키의'봄의 제전', 윌리엄 슈맨의'세속 칸타타 제2번-자유의 노래'를 연주했다. 윌리엄 슈맨은 줄리아드 스쿨 총장과 뉴욕 링컨센터 사장을 지낸 작곡가다. 슈맨 부부도 대통령 박스석에 닉슨 부부의 손님으로 앉아 있었다. 닉슨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18일 케네디 센터 내 아이젠하워 시어터 개관 공연인 입센의'인형의 집' 도 관람했다.

아이젠하워의 아이디어, 케네디의 추진력

케네디 센터는 미국 연방 정부가 공연장 신축에 처음으로 돈을 낸 경우다. 1958년 워싱턴에 미국의 수도에 걸맞는 공연예술센터를 지어야 한다고 처음 얘기한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었다. 그는 국립문화센터 신축 조례에 서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아트센터 건립을 위해 팔걷고 나선 것은 케네디 대통령이다. 그는 1963년 미국 굴지의 기업 총수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베풀면서 국립문화센터 건립을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세계 각국의 수도에는 아름다운 공연예술센터가 있는데 미국에만 없다며 설득 작업에 나섰다. 당시 언론은 케네디 대통령을 '집요한 세일즈맨'에 비유했다.

오찬 모임이 있은지 불과 몇달만에 그는 암살당하고 말았다. 새 공연장은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는 건축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건물 전체가 거대한 케네디 기념관 같아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64년 12월 2일 존슨 대통령이 주재한 착공식은 케네디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분위기로 숙연해졌다. 이 행사에는 로버트 케네디,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도 참석했다. 존슨 대통령이 삽토식에 썼던 금제 삽은 1858년 맥킨리 대통령이 백악관 앞 잔디밭에 식수할 때 썼던 것이다. 1914년 링컨 기념관 착공식 때 태프트 대통령이, 1938년 제퍼슨 기념관 착공식 때 루즈벨트 대통령이 각각 사용했던 것이다. 예산 부족에다 이탈리아에서 카라라 대리석을 싣고 오는 화물선의 파업으로 공사 기간이 6년으로 늘어났다. 인근 케네디 국제 공항에서 이착륙 때 발생하는 비행기 소음을 막기 위해 지붕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콘크리트를 쏟아 부었다. 비행기 항로를 수정하는 일도 오래 걸렸다.

총공사비는 7000만 달러. 연방 의회는 4300만 달러의 예산을 승인했다. 2300만 달러는 현금으로 지급했고 나머지 2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국채를 발행했다. 500만 달러를 낸 케네디 일가를 비롯해 윌라드 메리어트, 존 록펠러 3세, 마조리 메리웨더 포스트 등이 개인 기부자로 나섰다.

이탈리아.일본.오스트리아.캐나다 등 각국 정부의 지원

각국 정부의 지원도 끊이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1500만 달러 상당의 카라라 대리석 3700t를 보내왔다. 콘서트홀의 파이프 오르간은 보스턴의 필렌(Filene) 재단이 기증했다. 오페라 극장의 붉은 바탕에 금빛을 수놓은 실크 무대막은 일본 정부의 선물이다. 일본 정부는 1970년대말 케네디 센터 옥상에 들어선 테라스 시어터(513석)의 건축비를 모두 지원했다. 실내악.발레.현대무용.연극을 위한 소극장 무대다.

오페라 하우스의 롭마이어 크리스탈 샹들리에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선물했다. 콘서트홀의 하델란드 크리스탈 샹들리에 7개는 1997년 개.보수 공사 때 보노르웨이 정부가 희사했다. 아이젠하워 시어터는 연극.뮤지컬.발레.소극장 오페라가 가능한 무대로 40명의 연주자를 수용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피트도 갖췄다. 검붉은 색의 무대막은 수제 양모로 만든 것으로 캐나다 정부가 보내왔다. 이스라엘 정부는'이스라엘 룸', 아프리카 22개국은 '아프리카 룸' 등 VIP 룸을 만들어줬다. 이밖에도 각국에서 많은 조각과 회화 등 미술품을 기증했다.

포토맥 강변의 '한 지붕 다세대 가족'

건축 설계는 에드워드 더렐 스톤이 맡았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인도 뉴델리 미국 대사관을 설계한 건축가다. 애초에는 포토맥 강 위에 거대한 수련(水蓮)이 떠있는 모습으로 설계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직육면체의 상자 모양이 되었다. 건물에 별명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케네디 센터를 가리켜 '거인국(巨人國)의 구두상자''세계 최대의 클리넥스 상자''해변의 고래'라고 불렀다.

3개의 독립된 공연장을 광장을 중심으로 ㄷ자 모양으로 배치한 뉴욕 링컨센터와는 달리 워싱턴 케네디 센터는 모든 공연장이 한 건물 내에 들어있다. 포토맥 강에서 볼 때 왼쪽부터 아이젠하워 시어터, 오페라극장, 콘서트홀이 나란히 놓여 있고 강변쪽으로 길다란 로비가 이들 세 극장을 연결한다. 3개 극장이 함께 쓰는 공간이긴 하지만 이 로비(Grand Foyer)는 길이 192m, 폭 18m로 마치 산책로 같다. 워싱턴 기념탑을 옆으로 눕혀 놓아도 2.1m가 남는다.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 붉은 카페트가 깔려 있다. 로비 한켠에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흉상이 놓여 있다. 콘서트홀 쪽 로비에는 윌리 웨버의 조각'아폴로 10호 1970'이 눈길을 끈다.

미국영화연구소의 시사실을 개조한 패밀리 시어터(324석)은 2005년 12월 9일에 개관했다. 어린이를 위한 연극 공연과 함께 예술교육 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오디오 시설과 디지틀 비디오 영사 시스템을 갖췄다.

캬바레 스타일의 테이블이 특징인 '시어터 랩'(399석)에선 추리극'셰어 매드니스(Shear Madness)' 를 18년째 상연 중이다. 케네디 센터의 운영 주체는 스미소니언 협회다. 연방 정부가 운영비 일부를 대준다. 국립공원 서비스의 일환이다.

관객 접근도 높이기 위해 중앙광장과 주차장 마련

1976년 개관 5주년 기념으로 라 스칼라 극장 전체 스태프가 2주 동안 첫 미국 공연을 왔다. 베르디'레퀴엠''맥베스', 푸치니'라보엠', 로시니'신데렐라', 베르디'시몬 보카네그라'등을 상연했다. 같은 시즌 파리 오페라 극장도 베르디'오텔로', 모차르트'피가로의 결혼', 구노'파우스트'를 들고 첫 미국 공연에 나섰다.

케네디 센터는 1997년 콘서트홀의 음향 개보수를 끝낸 데 이어 2004년 봄까지 중앙광장 공사를 끝냈다.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설계를 맡은 이 공사의 예산은 6억 5000만 달러. 광장 좌우에 신축 건물 2동이 들어섰다. 여기엔 공연에술 교육센터 겸 자료관, 워싱턴 오페라 연습실 등이 있다. 공연장을 오가는 보행자들이 연습 광경을 볼 수 있도록 대형 유리로 마감했다.

중앙 광장 설계에 앞서 케네디 센터를 답사한 니룔리는 '주변 도로가 스파게티 같다'며 강과 고속도로로 포위된 공연장의 입지를 비꼬았다. 워싱턴 시도 1998년부터 퇴근길의 만성 정체와 병목 현상으로 몸살을 앓는 케네디 센터 주변 도로와 나들목에 대한 교통 평가를 실시했다. 결국 고속도로를 지하로 연결하고 그 위에 광장과 호수, 보행로를 만들어 인근 지하철 역과 내셔널 몰, 프레지던트 파크와 케네디 센터를 곧장 연결했다. 도로 주변에는 2만대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주차장도 마련했다. 중앙광장은 5000명까지 수용하는 야외무대로도 활용된다.

공식 명칭: The 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개관: 1971년 9월 8일

◆홈페이지: www.kennedy-center.org

◆건축가: 에드워드 더렐 스톤 Edward Durrel Stone

◆객석수: 콘서트홀 2442석, 오페라극장 2300석, 아이젠하워 시어터 1100석, 패밀리 시어터 324석, 테라스 시어터 513석, 시어터 랩 399석

◆부대시설: 밀레니엄 스테이지, KC 재즈 클럽

◆레스토랑: 전망대 레스토랑(일~수 오후 5시~8시, 목~토 오후 5시~8시30분, 브런치 뷔페 일 오전 11시~오후 2시. 202-416-8555) KC 카페(샐러드 바 오전 11시30분~오후 8시, 그릴 런치 오전 11시30분~오후 2시, 디너 그릴 오후 4시30분~오후 8시, 피자.파스타 오후 4시30분~오후 8시)

◆상주단체: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 워싱턴 발레, 워싱턴 퍼포밍 아트 소사이어티, 아메리칸 칼리지 시어터 페스티벌

◆세계 초연: 번스타인'미사'(1971년), 히나스테라'Beatrix Cenci'(1971년), Stephen Schwartz'Pippin'(1972년), La Montaine'Wilderness Journal'(1972년), 윌리엄 슈맨'젊은 군인들의 죽음''교향곡 제10번-아메리칸 뮤즈' 'Casey at the Bat'(1976년), 제롬 로렌스'10월 첫 월요일'(1977년)

◆가이드 투어: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주말 오전 10시~오후 1시. A층의 주차 플라자에서 출발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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