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이 싫은 「들러리 후보」/김진 기동취재반(총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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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금 부산 사하구에서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집권여당이 공천한 이재국 후보는 혹시라도 당선되면 큰일(?)이어서 아예 선거운동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반면 무소속 서석재 후보는 자신이 실질적인 민자당 공천자라는걸 은근히 풍기면서 구두밑창이 닳도록 표밭을 누비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다른 후보들은 『김영삼 대표와 서의원이 짜고 허수아비 공천자를 내보냈다』는 독설을 퍼붓고 있다.
내막을 아는 유권자들이야 감을 잡았지만 순진한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사하는 「눈가리고 아옹」하는 정치쇼의 코미디같은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물론 파행의 원인은 왜곡된 공천이다.
서의원이 동해시 후보매수사건에 걸려 공천을 못받자 부산기득권을 주장하는 민주계측은 그를 구제하기 위해 「당선될 염려가 없다」고 판단한 이재국 당이념연구위원을 내보낸 것이다.
서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던 이씨는 현재 주위의 눈총을 견뎌내며 스스로 발을 묶어두고 있다.
정당연설회나 사랑방좌담회는 아예 구상도 안했고 개인 홍보물도 하나만 만들었을 뿐이다.
『나를 뽑아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니 선거사무실은 개점휴업상태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주위의 시선이 하도 부담스러워 요즘 며칠간은 앓아눕기까지 했다.
김영삼 대표는 심복 서의원을 도우려고 무척 신경쓰고 있다.
「모양이 좋지 않다」는 건의에 결국 취소하긴 했지만 17일 오후 사하구지하철공사장을 방문해 서의원과 악수하는 행사까지 계획했을 정도다.
서의원은 유권자의 심판이 남은 과제라고 보고 『3년동안 고민하고 번민했으며 반성했다. 용서해달라』는 읍소에 열중하고 있다.
집권여당 공천자는 발을 빼고 당대표는 무소속 심복을 끌어당기는 사하구선거.
정치지도자의 이러한 파행적 정치행위가 우리의 정치후진상을 반영하는 자(척)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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