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 BDA 수사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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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사 기간 4년, 비밀요원 침투,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증거'.

뉴욕 타임스(NYT)는 12일 북한의 핵실험과 맞물리면서 최근까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최대 현안이 됐던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미 법무부가 007작전으로 수사한 뒷얘기를 전했다. NYT에 따르면 미국이 북한의 돈줄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미 법무부는 북한에서 만든 위조지폐와 가짜 담배, 그리고 비아그라와 마약 등을 미국에 유통시켜 온 중국계 범죄 조직을 4년에 걸쳐 끈질기게 추적했다.

증거 확보를 위해 법무부는 범죄 조직에 비밀요원들을 침투시켰다. 비밀요원들이 범죄 조직의 신임을 얻자 그 가운데 남녀 한 쌍을 연인 관계로 위장시켜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 앞바다에서 선상 결혼식을 열게 했다. 그리고 결혼식에 초대된 범죄 조직원 수십 명을 한꺼번에 체포했다. 작전명은 결혼식에 쓰인 배 이름을 따 '로열 참 앤드 스모킹 드래건(Royal Charm and Smoking Dragon)'이라 불렀다.

법무부는 이 작전과 추가 수사를 통해 모두 59명을 체포했고, BDA의 돈세탁과 관련한 수많은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미 재무부는 이를 근거로 BDA를 돈세탁 혐의로 제재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데이비드 애셔(현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는 "수사 결과 BDA뿐 아니라 중국의 대형 상업은행인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 등의 돈세탁 혐의도 포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행 같은 큰 은행을 곧바로 제재할 경우 자칫 금융 시스템 붕괴의 위험이 있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개인 은행인 BDA만 제재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NYT는 "여기에는 중국의 반발도 고려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2005년 9월 제재가 시행되기 직전 BDA에 있던 자금을 서둘러 인출했으나 2500만 달러는 미처 빼지 못하고 동결됐다. 그 뒤 돈줄이 끊긴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강행 등의 모험을 하게 됐다는 것이 NYT의 평가다. 북한을 압박하려던 미국이 역설적으로 핵개발을 할 계기를 제공하고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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