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 떠나는 해직교수 대명사/서울대 37년 고별강의 변형윤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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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회적 고뇌와 싸워라” 평생지론 강조/「경제기사도」론 설파에 후학 모두 숙연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자기주위의 사회적 고뇌와 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80년 신군부에 의한 4년간의 「정치방학」끝에 복직한 「명강의」 「해직교수」의 대명사 서울대 변형윤 교수(65·경제학과)가 13일 오후 교내 문화관에서 교수생활을 마감하는 고별강의를 갖고 정년퇴임했다.
문화관을 가득 메운 60여명의 후배 교수와 학생등 5백명에게 강의때마다 늘 해오던대로 영국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 교수가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취임하면서 한 개강사 끝구절을 그대로 인용,말문을 연 변교수는 갖가지 상념과 회한에 젖은듯 잠시 뒷말을 잇지 못했다.
마지막 강의의 주제는 대학생때부터 그를 「사로잡아왔고」 경제학자로서 정신적 축이 됐던 마셜의 「경제기사도에 관하여」.
『경제학은 한 면에 있어서는 부의 연구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연구의 일부분입니다. 중세의 기사가 조국과 십자군을 위해 사심없는 충성심을 가졌던것처럼 산업에 있어서의 기사도는 공공적 정신입니다. 이것은 다름아닌 근로자와 공공의 복지,사회발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지요.』
본격 강의가 시작되자 참석자들은 숨을 죽인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듯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1시간여만에 강의가 끝나자 이승훈 경제학과학과장·학생들은 연단으로 달려가 「작별인사」를 나눴고 강의중간에는 다른 강의가 끝난 학생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이 강의를 들은 성낙제군(26·경제 4)은 『학자로서의 「머리」보다 「따뜻한 마음」 「소외된 사람을 늘 생각하라」는 것등 경제학도로서 갖춰야할 덕목을 가르치신 교수님의 지론을 가슴속에 항상 간직하겠다』고 다짐했다.
28세때인 55년 모교 강사로 부임,그동안 전국교수협의회 회장을 맡는등 「실천하는 지성」을 대표해온 변교수는 국내학계에 처음 계량경제학을 도입,정착시킨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해직된후 광화문에 제자들이 그의 아호를 따 마련해둔 학현연구실에서 연구와 저술에 몰두,현재까지 『반주류의 경제학』 『분배의 경제학』등 20여권의 저서를 냈으며 현재 경실련 공동의장직을 맡고 있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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