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가 「돈국구」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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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의 전국구 후보명단도 전국구 제도의 본래 취지를 못살리고 국민의 기대에 미흡하기는 민자당과 매한가지다. 밀실에서 양계파 보스가 철저히 나눠먹기 식으로 선정한 행태나,사연이 크게 작용한 선정기준이 모두 그렇다.
민주당은 야당이 동원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여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치자금의 옹색함을 들어 어쩔 수 없는 인선이었다고 변명한다. 야당의 어려운 속사정을 감안하면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이같은 외부요인만이 아닌 야당 내부의 구태의연한 행태와 구조적 모순이 스스로의 발전과 인재충원 과정을 현저히 왜곡시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민주당은 정치에 대한 국민정서의 변화속도와 방향을 정당운영에 반영하는데 소극적이었다.
우선 전국구의 인선기준에 거액의 헌금을 공공연히 내건 것은 법률적으로나 정치도의상 시비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30여억원을 특별당비로 내 당운영(총선대책)을 돕는건 법이 보장한 당원의 권리라는 민주당의 주장과 공직추천을 대가로 받은 기부금이니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검찰의 소추의지중 어느쪽이 옳은지는 앞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적 다툼 이전에 30억원으로 의원직을 사고 파는 것이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느냐가 더 중요하다. 아마 야당의 특수한 사정을 이해하기 보다 『전국구가 돈국구냐』라고 실망·분노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30억원의 헌금이 노리는 대가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정당이 이런 통념에 반하는 논리로 과연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또 민주당이 영입인사로 군출신을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가 잘 납득되지 않는다. 김대중씨에 대한 군부의 거부감을 중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봐줄 수는 있겠으나 영입된 군출신 중에는 과거 독재정권 아래서 야당과 인권탄압에 앞장섰던 사람도 있다.
전체적으로 영입인사라는 사람들이 제대로 국민대표성을 보완하는 전국구의원 감인지에 대해서도 잘 수긍이 가지않는다. 심지어 영입인사에게도 다소 낮지만 헌금기준이 적용되었다는 소문이 있고,헌금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대타까지 예비해 두고 있었다 하니 마치 경쟁입찰을 보는 느낌이다.
정치자금에 여유가 있는 국민당 전국구 명단에는 금품거래의 기미는 안보인다. 그러나 면면을 보면 대체로 정계·관계를 비롯,각 분야에서 은퇴했거나 정주영 대표와 사연이 있는 사람이 많다. 인물의 공공성이나 실제 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냐는 점에서 보면 구색을 위해 급조된 인상이다.
이런점들을 두루 따져볼때 현행 전국구 제도는 정말 존치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대표성 보완이란 제도 본래의 취지는 간데없고 정당지도자들의 사연과 뭉칫돈만이 난무하는 풍조가 고쳐지지 않고선 결코 이런 의문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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