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당하는 동구문화재/자유화부작용(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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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교회·미술관의 성모상·가구등 곳곳서 도난/공무원도 합세 밀반출 앞장
동유럽국가들이 민주화전후 각국에서 문화재급 골동품에 대한 마구털이가 성행하고 있다. 이같은 골동품수난은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체코에서 잘알려진 「기적의 성모상」이 안치됐던 교회의 담장아래로 뚫린 굴을 통해 사라져 버렸고 보헤미아 스비코프성에 전시중인 15세기 성루드밀라 목조상도 없어졌다. 심지어 피아테(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시체를 안고 있는 조각)는 예수의 다리만 남긴채 없어졌다. 범인들이 피에타가 자동차에다 싣기에 너무 커서 다리부분만 잘라내고 훔쳐갔기 때문이다.
돈벌이에 눈먼 내국인과 서방 수집가들의 수요가 맞물려 벌어지고 있는 골동품 도난·밀반출 러시는 체코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자유화 물결속에서 돈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폴란드·구동독등 동유럽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체코에서 도난당한 골동품은 성모상·바로크식 제단화·금박 천사상·성배·성상·14세기지도·고가구·묘석등 모두 1만5천여점으로 3천6백만달러(2백7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9년 민주화 이후 도난품은 약 3만개에 이르지만 회수된 것은 그중 8%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수도 프라하 부근 세들레치우 쿠트네 호리라는 마을에선 모든 교회가 싹쓸이 식으로 깨끗이 털렸다.
『처음엔 교회가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미술관과 박물관까지 털어간다』고 연방문화부 연구담당관 다니엘라 보콜코바는 걱정스레 말하고 있다.
극작가인 바츨라프 하벨 현대통령과 배우·예술가들이 주도한 89년 벨벳혁명의 결과 예술과 종교 유산에 적대적이었던 40년간의 공산통치시대에도 없었던 야만적 문화파괴가 체코에서 자행되고 있다.
문화부 사법담당관 파벨 크루파는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장벽이 제거됐다. 지난해 체코를 찾은 관광객만도 4천7백만명에 이르러 이들을 일일이 체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체코산 도난 골동품은 60%정도가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흘러들고 있다. 미국등지 수집가들이 몰려올 것으로 보여 골동품 절도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나머지는 골동품상의 골방으로 흘러들어 고객을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최근 2년간 프라하에서는 골동품점이 1백50여개나 늘어났다.
폴란드에서는 미술품도난이 여행제한이 완화된 70년대부터 시작됐다. 신생 일간 노바 유로파지는 최근 『값나가는 물품 대부분은 이미 이 나라를 빠져 나갔다』고 보도했다.
폴란드에서 골동품 도난·밀반출은 세관원들까지 합세,나날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올들어 폴란드 세관직원 1백60명이 뇌물수수로 해직됐다.
폴란드는 또 성상·카핏등 러시아 골동품의 대서방 반출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폴란드 세관은 구소련에서 독일로 가는 군용열차에서 순금제 및 보석이 박힌 성상 40개를 압수한 바 있다.
체코는 폴란드보다도 도굴꾼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직 크로나화가 태환성을 갖지 못하고 있어 골동품값이 매우 싼 편이다.
여기에 공산통치하에서의 반종교 정책 때문에 교회 관리자가 엉망인 점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강이 시원찮은 한 노인이 교회 40개를 관리해야할 정도로 체코정부의 문화재관리가 허술한 점도 이같은 골동품 수난의 이유가 되고 있다.
도난사태를 막기 이해 최근 정부기관이 컴퓨터를 이용한 예술품 목록작성,비디오 촬영 등 실태파악작업 외에도 보안개선을 위한 지원을 늘렸다.
보콜코바는 『위생이나 교육부문에 쓸 돈도 없는 판에 경보장치 개선에 쓸 자금이 있겠는가』라고 비관적으로 말하고 있다.
골동품을 노리는 사람들은 대개 수집가나 거래업자의 유혹을 받은 젊은이들이다. 『이전세대에는 교회에서 꽃 한송이 훔치는 것도 커다란 죄악이었던데 비해 교회와 무관하게 자란 요즘 세대들에 성물은 별의미가 없는 것일 뿐』이라고 한 관리가 말했다.
체코연방경찰은 현재 체코공화국내 30개조직,슬로바키아공화국내 10개조직을 포함해 1만명정도가 골동품절도 및 불법거래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체코에서는 1945년 이전부터 골동품 수출은 금지돼 있으나 판매는 허용돼 있다. 따라서 외국인에게 골동품을 파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외국반출에 대한 단속도 허술해 외국인이 공항등을 통해 골동품을 들고 나가도 제재를 받는 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곽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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