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찾는 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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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성북동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왼쪽 산기슭에 「심우장」이라는 현판이 붙은 조그만 한실이 한채 있다.
주위의 호화주택들에 가려 눈여겨 찾지 않으면 그대로 지나치기 십상인 이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선생이 그를 따르는 동지들의 도움으로 평생 처음 마련한 자기집이다.
심우장은 「소(우)를 찾는 집」이란 뜻이다. 불교에서 소는 마음을 뜻하므로 만해는 이집의 당호를 「올바른 마음을 찾는 집」이란 뜻으로 지었다.
실제로 이 심우장에는 당시 우리민족의 마음을 찾으려는 그의 일화들이 적지 않다. 우선 집의 앉음새부터가 그렇다. 만해는 이 집을 지으면서 양지쪽을 피하고 북향으로 앉혔다. 비록 산너머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총독부건물을 마주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심우장의 냉골 찬방에서 고구마로 끼니를 이을만큼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변절한 최린이 찾아왔다. 그러나 만해는 부재중이라고 그를 문전박대했다.
최린은 살림이 말이 아닌 것을 보고 만해의 어린딸(영숙)에게 백원을 쥐어주고 돌아섰다. 뒤늦게 그것을 안 만해는 부인을 좇아보내 그 돈을 되돌려 주었다.
육당 최남선은 이와 달리 면전박대를 당한 일이 있다. 어느날 육당이 길에서 우연히 만해를 만나 『오랜만이오. 만해』라며 다정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당신 누구요』라며 가던 길을 그대로 가려했다. 육당이 답답하다는듯 『나 육당일세. 어찌 나를 몰라 보나』고 말하자 그는 『뭐,육당,그 사람은 내가 장례 지낸지 오래된 고인이오』라고는 총총히 그 자리를 떴다.
『일본총치하에서는 절대로 호적을 만들지 않겠다』던 고집때문에 하나뿐인 딸을 입적도 못시키고,그래서 학교도 안보낸 만해. 그 위대한 선각자의 마음을 찾는 「심우사상」은 그의 일상 뿐 아니라 시문에도 구절구절 배어 『님의 침묵』같은 명시를 남겼다.
최근 생가복원공사를 마친 충남 홍성군은 내년 3·1절 이전까지 현재 서울 망우리에 있는 만해의 묘를 고향으로 옮겨 역사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친일문학론이 새삼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즘 만해를 기리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바로 우리의 마음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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