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바람」에 깊어지는 지역감정(14대총선 변수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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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텃밭 싹쓸이”강원까지 번져 「5한시대」우려/「부산풍」북상지역마다 “꿈틀”
14대총선 역시 지역감정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에 이견이 별로 없다.
13대 대통령선거 및 국회의원선거와 비교해 볼때 지역바람의 강도나 표의 집중화 현상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나 의석의 지역집중현상은 비슷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정당·학계·선거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감정에 대한 전국민적인 자성과 이를 해소하려는 각계의 노력에 힘입어 개선의 기미를 보여온 것도 사실이나 이번 선거를 계기로 그같은 노력들이 일거에 날아가 버릴 위기에 놓이게 됐다는게 이들의 공통된 예상이며 걱정이다.
그 주원인으론 여야 각 정당·정파·후보자들이 첫번째로 꼽힌다. 바로 이들이 지역감정을 볼모로 선거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당은 이미 선거판을 호남대 비호남,또는 TK(대구·경북)대 반 TK등 지역대결 구도로 몰고가겠다는 전략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고,특히 민자당은 대권후보경쟁을 빌미로 각계파에 지지기반에서의 「싹쓸이」를 주문,벌써부터 지역감정의 군불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신생 국민당까지 지역연고를 내세워 「강원도당」이라고 가세했다.
이 때문에 허리잘린 국토는 또다시 호남당·비탈(강원)당·TK파·PK(부산·경남)파·충청파 등으로 4분5열 「5한시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13대 선거의 지역감정바람 진원지가 호남쪽이었다면 이번엔 영남쪽이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입증이라도 하듯 부산의 기류가 벌써 심상치 않다고 한다.
호남의 경우 민주당을 제외한 여타의 정당들이 볼때는 여전히 철옹성이지만 내부적으론 감정의 응어리가 많이 풀려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13대 대선때 김대중 후보에 대한 광주·전남북 유권자들의 지지는 78.8%(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로 거의 절대적이었으며 4개월후에 있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평민당득표율은 54.3%를 기록,지역정서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광역의회선거때는 같은 색깔의 신민당에 38.4%만을 던져주었다. 당시의 전국적 투표율저하현상과 소지역선거라는 특수성 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선때와의 편차 40.4%포인트는 그만큼 지역감정의 골이 메워져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실제 광주·전남북에선 『지역대결로 손해보는 쪽은 결국 호남』이라는 자각의 소리가 높다. 호남이 똘똘 뭉쳐 영남을 압도한 것까지는 신바람나지만 그러다보니 무색의 중부권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자초했다는데 대한 깨달음이다.
열화와 같은 지지에도 연이은 패배가 가져다준 한계의식,공천장사등 정당행태가 보여준 실망감에다 공천물갈이마저 기대치를 밑도는 등의 정치불신감까지 겹쳐 대 민주당여론이 근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음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자당이 호남에서 4∼5곳을 백중지역으로 분석하며 교두보확보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눅눅한 피해의식을 담고 있는 호남의 황색바람은 아직 잠복상태로 봐야하며 선거가 진행됨에 따라 다시 고개를 들 소지는 충분하다 하겠다. 하물며 영남쪽에서 바람이 분다면 「황풍」도 십중팔구 되살아날게 틀림없다.
문제는 「부산·경남정권」의 성급한 기대속에 이곳 주민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쪽은 이미 수차례의 이 지역 직당지원유세를 통해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며 자신의 대권쟁취를 위해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보내달라는 식의 호소를 하고 있다.
부산인근과 마산으로 이어지는 일부를 제외하면 합천·산청등 경남북부지역은 역대 선거결과를 보더라도 YS권역으로 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러나 「부산·경남정권 탄생」이란 말한마디로 전역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YS쪽은 이를 놓칠세라 더욱 기름을 부어댈게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이 바람은 곧바로 TK의 자존심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으며 지리산을 넘어 호남을 자극,강풍을 유발시키고 충청지역을 거쳐 자칫 강원도까지 흔들어 놓을 소지가 충분한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같은 지역주의의 결과 민자당은 속으로 『역대 어느때보다 손쉬운 선거』라고 쾌재를 부르고 있다. 다만 「너무 많이 당선될까봐 걱정」이라며 여유를 부리다 참패한 13대의 뼈아픈 경험도 있어 겉으로만 엄살을 피울 뿐이다.
호남과 국민당이 우세한 울산 및 몇몇 무소속 강세지역을 제외하면 경기·강원이남에서의 「쌀쓸이」가 가능하다는게 민자당의 판단이다.
각당이 서울등 수도권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원지역에 국민당바람이 불지는 아직 미지수다. 민자당에선 『바람이 불어봐야 모두 2등짜리』라고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국민당은 『14곳중 10곳을 휩쓸 것』이라고 장담한다.
「감자바위」라고 불릴 정도의 전통적 여촌이었으나 13대땐 6명의 야당후보를 당선시켜 그런 현상이 재현된다면 이변의 소지도 없지 않다.
영·호남,충청에서 지역감정이 첨예하게 표출된다면 잠재된 무대접 소외감이 꿈틀거릴 소지는 충분하며 비민자·반민주당을 담고 있는 이 무소속 지향정서가 바람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되고 있다.
망국적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지역감정이 이번 선거에서 또다시 나타나 선거의 큰 변수로 작용될게 거의 틀림없는데도 여야 정당들이 오히려 부채질만 하고 있어 걱정이다.<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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