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패션업계 지금 필요한 게 뭐? 스피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그래픽 크게보기

10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에 있는 '플라스틱 아일랜드' 매장의 하루는 신상품 전시와 함께 시작된다. 이날 들어온 상품은 앞주름 장식이 강조된 재킷 모양의 남색 블라우스. 최근 이런 주름 블라우스가 인기라는 매장 측 주문에 따라 일주일 전에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공장에서 급히 제작한 옷이다. 이 브랜드를 관리하는 홍열매 MD(구매 및 판매 책임자)는 "지난주부터 날씨가 풀리면서 얇은 소재의 블라우스를 찾는 고객이 많다"며 "내일은 얇은 시폰 블라우스와 민소매 미니원피스를 전 매장에 내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패션업계에 속도전이 붙었다. 소비자 반응을 체크해 가며 그때그때 옷을 만드는 반응생산(QR.Quick Response)이 보편화하면서 매일 신제품을 선보이는 매장이 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새 제품을 깔아라=여성의류 업체 아이올리의 영캐주얼 브랜드 '플라스틱 아일랜드'와 '에고이스트'가 주 6회 신상품을 내놓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매일 매장의 실적을 체크해 반응이 좋은 상품은 추가 주문하고, 최근 유행을 타는 제품을 새로 디자인한다. 잘 안 팔리는 아이템은 2~3주면 매장에서 퇴출당해 상설할인매장으로 향한다. 시즌마다 300~400가지 아이템을 선보이는 이 브랜드는 개설 1년 만에 전국에 46개 매장을 보유할 정도다. 반응생산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 전산 시스템으로 매장에서의 고객 반응을 실시간 체크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2004년부터 반응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제일모직은 계절별 초두 물량(초기 생산 물량)을 예상 물량 대비 90%에서 60%로 낮췄다. 대신 영업.기획 담당 직원들이 매일 퇴근 전 전산 시스템을 통해 아이템별 실적을 체크한다. 빈폴 등 캐주얼 브랜드의 신상품 입고 주기는 주 1~2회로 짧아졌다.

수입 업체들도 속도전에 가세했다. 3월 초 신세계 백화점 죽전점에 입점한 유럽 직수입 멀티숍 '데베 아베르'는 매일같이 4~5종류의 신제품을 내건다. 그동안 선보인 옷 종류만 500여 가지. 수입을 담당하는 현정환 바이어는 "2~3일 간격으로 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에서 신제품 샘플을 비행기로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재고 부담↓ 소비자 반응↑=반응생산 방식은 재고 부담을 줄이면서 소비자 호응이 높은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낸다. 최근 유난히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수요 예측이 어려워지는 점도 반응생산 방식이 빨리 확산하는 원인이다. 자주 신상품을 공급하다 보니 생산.물류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는데도 다들 반응생산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LG패션의 경우 2002년부터 반응생산을 시작한 이후로 재고 비중이 15% 정도 줄었다. 매주 신제품을 내놓는 남성 토털브랜드 TNGT의 경우 재고로 쌓이는 물량은 전체의 10%를 넘지 않는다. LG패션 캐주얼 MD 남명헌 과장은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맞추기 위해 신제품을 더 자주 출시할 예정"이라고 예상했다.

임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