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쾌검(快劍)과 둔도(鈍刀)의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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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1보 (1~25)]
白.胡耀宇 7단 黑.李世乭 9단

이세돌9단은 쾌활하다. 대담하고 거침이 없다. 자리가 어우러지면 술도 사양하지 않는다. 우승을 해 상금을 받게 되면 후배 동료들에게 푸짐히 한턱 쓰는 것은 물론이다. 기풍에서도 이런 기질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세돌은 몸을 사리지 않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바탕으로 거침없이 정상으로 진격해 왔다. 후야오위(胡耀宇)7단은 이세돌보다 한살 위로 만 21세. 지난해 바로 이 대회 8강전에서 이창호9단을 격파하고 4강에 올랐던 돌풍의 주역이다.

후야오위는 중국에서 '둔도(鈍刀)'로 불린다. 무딘 칼날의 명검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세돌은 전형적인 쾌검(快劍)이며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리는 예리함의 상징이다. 10월 16일 오전 9시30분. 후야오위가 자리에 앉아 이세돌을 기다린다.

시간을 약간 넘겨 나타난 李9단이 계면쩍은 미소를 흘린다. 돌을 가리니 李9단의 흑. 첫수가 우상귀에 노타임으로 놓였다. 전력은 이미 세계 정상에 여러번 오른 이세돌이 단연 우세하다. 그러나 후야오위에게는 동아줄처럼 질긴 뒷심이 있어 자칫 여기에 걸려들면 천하의 이세돌이라도 빠져나오기 힘들지 모른다.

초반은 빠르다. 백2에서 잠시 뜸을 들였을 뿐 거침없이 25까지 흘러간다. '큰 눈사태형' 정석은 수백 갈래의 변화가 있다. 그러나 최근 25까지는 거의 외길로 두어지고 있다.'참고도'처럼 두어지던 처음의 형태가 까마득한 고전으로 느껴진다. 오랜 세월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큰 눈사태형도 이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것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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