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잊기 위해 소설 쓴다"|「이문열의 문학 세계」 『문예 중앙』 기획 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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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 문학이 등한시해온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챙기려 애쓴다. 구상 단계를 지나면 나는 어떤 「감」에 의해 거의 무의식적·자동적으로 글을 쓴다. 내게 본능처럼 된 감에 의해 선택된 낱말·문장·지식·사상 등이 평론가들의 냉철한 인식에 의해 분석되고 난도질당할 때 나는 무의식 밑바닥에 있는 감을 의식 표면으로 끌어올려 나를 방어하는 무기로 삼는다.』
평단 일각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 10여년이 넘도록 독서계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 이문열씨의 소설적 마력은 무엇인가. 근간 『문예 중앙』 봄호는 이씨와 문학 평론가 홍정선씨의 기획 대담 「소설적 자전, 자전적 소설」을 실었다. 이 대담에서 이씨는 홍씨의 논리적이고 끈질긴 질문에 자신의 문학 세계에 대한 많은 것들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씨는 우선 『내 신산 했던 젊은 날이나, 그때의 무수한 체험을 「우려먹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면 불쾌하다』며 자신의 작품이 지나치게 체험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이씨의 소설들은 평단으로부터 개인사나 가족사에 대해 특별난 집착이나 편애를 보인 자전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지적도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지금까지 발표한 여러 편의 장편 중 「영웅 시대」 「젊은 날의 초상」 단 2편, 29편의 중·단편 중 4∼5편만이 비교적 내 삶, 내 가족사와 닮아 있을 뿐』이라며 『작품 구성에 있어 필요하면 체험을 이용하긴 하지만 이런 유별난 체험이 있으니 이걸 한번 써보자는 형태의 소설은 안 쓴다』고 밝혔다.
회사원·공무원·주부·대학생 등 지식인들을 꾸준한 독자로 확보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씨는 『책을 선택할 때 고급스럽고 전문적인 지식 등 일정한 양의 교양적 욕구가 있게 마련인데 글 쓸 때는 언제나 그러한 독자들의 욕구를 기억하려 애쓴다』고 했다.
사물·사건에 대한 구체적 서술보다 인상적인 개념화, 즉 「요새 가난한 사람들은 뻔뻔해지고 억지스러워졌어」 보다 「요새 보이는 것은 가난의 권리화 현상이야」라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지적이고 무게 감을 주면서, 또 아무 의문 없이 문장으로 옮겨가게 하는 문장법 등 그에게 너무 익숙해 자동적으로 나오는 소설 쓰기가 독자를 쉽게 끌어들이면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한편 이씨는 『「그것은 하지 말아라, 이걸로 해라, 이것 아니면 문학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강요받던 87, 88년에는 몹시 짜증스러웠고 화도 났다』며 민중 문학 진영과의 불편한 관계를 털어놓았다.
『사적인 감정상 밑바닥 삶에 대한 혹독했던 체험을 소설로 끄집어올려 다시 체험하는 것이 겁나 「민중적인」 작품을 별로 쓰지 않았다』는 이씨는 논리적으로는 『극단주의와 획일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거부감』이 민중주의를 거부, 자유주의를 지향케 했다고 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자유는 삶을 제한하는 시간과 공간, 신 같은 무형의 억압에 대한 것인데 제도나 사회의 압제에 대한 것만을 자유의 전부인양 강요받아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균형과 몫을 사회를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는다는 이씨는 『특정 시대 문학에서 경향적·목적적인 부분의 강조는 충분히 인정하나 그 몫을 넘어 균형을 깬 것이 문제』라는 것. 이러한 균형과 몫의 시각에 입각, 『80년대가 안고 있던 문제 중 해결된 것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문학의 건강성이나 사회의 도덕성을 위해 계급 문학·민중 문학이 적어도 50%의 지분은 문단에서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며 이씨는 이제 민중 문학 침체에 따른 불균형을 우려했다.
그러나 끝으로 이씨는 『기본적으로 내가 던져져 있는 상황은 고통과 외로움이고, 그것을 잊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으로 택한 것이 글쓰기』라고 밝혀 대 사회적 관심보다는 실존적·형이상학적 문체가 자신의 소설적 몫임을 분명히 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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