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도 잘하는 나라가 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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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은 6일 오전 EBS 영어 교육채널 개국 행사에 참석해 "시간이 있으면 나도 이 방송으로 영어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은 통역의 완벽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직무에 전혀 지장 없지만 직무를 마치고 자유시간이 있을 때 (영어를 못해) 답답하다"며 "시간이 없으니 아무 때나 접속해 EBS를 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또 "영어 때문에 우리 국민이 기죽지 않도록, 불안하지 않도록 우리 다함께 노력해 영어도 잘하는 나라가 되자"며 "그래서 세계는 우리 안에 들어오고 우리는 세계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EBS 영어 방송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지난해 어학연수와 유학으로 해외에 지출된 돈이 4조4000억원, 영어 사교육비만 10조원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교육 기회의 불균등이 사회적 통합을 어렵게 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학생은 세계적으로 말이 통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으로 갈라질까 봐 걱정스럽다"며 "영어 교육을 쉽게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 중인데 EBS가 큰 일을 맡아줬다"고 했다. 이어 "국가가 체계적으로 영어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선제적인 투자"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화상 대화를 한 초등학생이 '어렸을 때 영어공부를 어떻게 하셨느냐'고 묻자 "열심히 했는데 그때는 책만 읽었다. 문법 공부만 하고 말 주고받는 걸 배울 기회가 없어 지금도 말은 못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 영어관 변화?=노 대통령은 이날 유난히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거 그가 보인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최근 한.미 FTA 타결과 맞물려 "노 대통령이 세계화 전도사가 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낳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나는 지금까지 미국에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다. 국내 정치용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미국에 가는 일은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반미 좀 하면 어떠냐"고 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반미로 재미 좀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해 2월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을 때 시사평론가였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인터뷰에서도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 언급됐다. 노 대통령은 "영어를 잘 못하지요"란 질문에 "통 못하지요"라고 답했다.

이때 이 부분이 약점으로 비칠 것을 우려한 비서관이 "영어 잘 하신다, 회화도 꽤 하고 발음도 좋고"라고 끼어들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말을 제대로 못 하면 못 하는 거야"라고 받았다.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인 2001년 1월 영어 회화 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을 가르쳤던 미국인 매리 콜린스(여.61)는 2003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의 회화 실력은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하지만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는 답답함을 느끼는 중하급(low intermediate)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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