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3조9200억원 남기고 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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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시아 최고 여성부호인 니나 왕(王如心.69) 차이나켐 그룹 회장이 3일 난소암으로 숨지면서 328억 홍콩달러(약 3조9200억원)에 이르는 그의 재산이 누구에게 상속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홍콩 정부가 지난해 2월 상속세를 폐지한 덕분에 유산 전체가 상속자에게 넘어가게 된다. 문제는 재산을 물려받을 자녀도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학.제약업계 거물이던 그의 남편 테디 왕(王德輝)은 1990년 4월 범죄조직으로 추정되는 집단에 납치된 뒤 행방불명됐으며,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99년 사망 처리됐다. 그는 남편이 실종 한 달 전에 남긴 유서를 바탕으로 전 재산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시아버지 왕팅신(王廷歆.96)이 "며느리가 유서를 위조해 재산을 가로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97년부터 7년간 소송을 벌였다.

2002년 1심에선 유서가 위조됐다며 전재산을 왕팅신에게 넘기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즉각 항소, 2005년 12월 최고법원에서 승소해 남편 재산의 유일 합법 상속자가 됐다. 하지만 판결 직후 난소암 진단을 받고 1년여를 앓다 이날 숨졌다.

니나 왕은 6년 전에는 모든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고, 20여 년 전에는 재산을 홍콩판 노벨상을 만드는 데 내놓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를 문서로 남기지 않아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니나 왕의 변호사 측은 "그의 유언장을 찾고 있다"며 "유언장에 구체적인 유산 분배 계획이 적혀 있다면 이에 따를 것이고, 그렇지 않았으면 법 규정에 따라 재산을 가까운 일가 친척들에게 나눠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니나 왕의 재산은 모친(91)과 3명의 형제자매를 비롯한 친정 식구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와 치열한 재산 다툼을 벌였던 시아버지나 시집 식구들은 상속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 확실하다는 게 홍콩 재계의 분석이다.

남편이 남긴 화학사업을 바탕으로 부동산업에까지 손을 뻗친 그는 올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부호 204위에 올랐다. 그는 평소 햄버거 등 값싼 패스트푸드 음식을 즐겨 구두쇠로 통했다.

1937년 상하이(上海) 태생으로 홍콩에 건너와 살다 어린 시절 소꿉친구인 남편과 55년 결혼했다. 두 갈래로 땋은 헤어 스타일과 과감한 색깔의 중국 전통 복장을 즐기는 바람에 비슷한 모습의 만화 캐릭터인 '리틀 스위티'로 불려 왔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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