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김현희 폭파사건 대선 활용" 문서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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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가 1987년 승객 115명이 숨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원인이 규명되기도 전에 여당 대선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북한의 테러 공작'으로 규정했던 사실이 공식 문서로 처음 확인됐다.

5일 국정원이 공개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 공작(무지개 공작)' 일부 문건에 따르면 안기부는 KAL 858기 사건을 이같이 규정하고 여당에 유리한 대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치공작을 시도했다.

A4 용지 5쪽 분량의 전체 문서에는 KAL 858기 사건 이후 ▲홍보 목적 ▲폭로 시기 및 방법 ▲국내 및 대북 홍보 방향 등이 담겨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 가운데 2쪽 정도의 분량만을 공개했다.

인터넷신문 통일뉴스가 정보공개를 청구, 보도한 이 문건에서 안기부는 '1987년 11월29일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 실종된 KAL 858기 사건이 북한의 테러 공작임을 폭로한다'고 목적을 밝히고 있다.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고 국민의 대북 경각심과 안보의식을 고취해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한다는 목적에서다.

그러나 문서 작성 시기가 정부가 사고 경위나 지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데다 수색작업이 진행중인 시점이어서 안기부가 '테러 공작'으로 속단한 배경을 두고 또다른 추측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병상)'는 '안기부 개입설'을 끊임없이 제기한 바 있다.

안기부는 또 ▲12월5일 '북한이 사건 배후에 개입 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외교부 장관 성명 ▲국내외 언론에 대대적인 보도 유도 ▲12월5일 이후 일본, 바레인 및 한국 수사 상황과 북한 반응에 따른 적절한 시기 선택 ▲대선일인 12월16일 이전 중간 수사결과 발표 등의 수순을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국내 홍보 방향으로 ▲북한이 한국의 대선 및 서울올림픽 방해를 위해 자행한 사건 ▲일부 후보들이 집권욕에 어두워 안보 현실을 망각한 채 전개하고 있는 위험한 통일론 규탄 등을 집중 부각토록 했다.

역시 대북 홍보 방향으로도 ▲테러의 즉각적인 중지 및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대화 호응 유도 ▲유가족 등 국민의 대북 규탄 집회.성명 및 논설 등을 유도해 북한 규탄 분위기 확산 등을 방침으로 정했다.

문서에 담긴 내용들은 비교적 계획대로 실현됐다. 공교롭게도 당시 정부는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15일 김현희(마유미)의 신병을 바레인측으로부터 넘겨받았고, 이 과정은 신문과 방송에 고스란히 보도됐다.

국정원 관계자는 "정보공개청구법에 따라 과거사 진실위에서 문건의 일부를 공개했다"며 "법적 절차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한 것이므로 비공개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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