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정부는 76년 7월 외무부와 중앙정보부 주도로 '한반도 정세 및 한.미 관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카터 선거 캠프의 핵심 참모들에게 보냈다.
이 보고서는 남북 대치 상황과 군사력 비교, 한반도에서 미국의 이해관계, 민주주의와 자유.인권 문제에 대한 해명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국의 발전 목표와 미국의 국가 이념이 부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한국의 인권 상황과 관련해 이 보고서는 '한국이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개인 자유의 신장에 앞서 공동체적 사회정의가 우선이고, 일부 성직자에 대한 기소는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범법 사실에 기인한 것일 뿐 종교의 자유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터 후보는 한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 시각이 있었다.
정부는 또 그해 8월 조지아주 출신 사업가로 카터의 정치참모 역할을 했던 존 포프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김영선 당시 주일 대사에게 훈령을 보내 포프를 면담하게 했다. 김 대사는 포프를 만나 "주한미군이 유럽과 극동으로 소련의 군사력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북한군의 남침 억제에도 긴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포프에게 주미 한국 대사와 카터 후보의 면담을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카터 집권에 대비해 '80년까지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전술 핵무기를 계속 남한에 배치할 수 있도록 미국을 설득한다'는 대미 외교 목표를 설정했다.
정부는 특히 자주국방이 달성될 80년까지는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미국이 전술핵을 철수하더라도 이 사실이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미국이 북한과 독자적으로 접촉해 대북 무역제재를 완화하지 않도록 4자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인식도 갖고 있었다.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77년 3월 카터 전 대통령은 '82년까지 주한미군 완전 철군을 목표로 4~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한국에서 미군을 뺀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한국에 통보했다.
정용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