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두번째 교육부사령탑 조완규장관(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학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국제수준 연구능력 키우는게 급선무/「내자식」 교육열 「우리자식」으로 바꿔야/대담=문병호 사회2부장
『대학을 살려야 나라가 삽니다.』 해방후 서른두번째 교육부장관이 된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은 교육행정의 최우선과제로 대학육성을 꼽았다. 국제경쟁에서 크게 뒤진 우리 대학들을 과감한 투자와 지원으로 제구실을 할 수 있게 키우지 않고는 우리 국가·사회의 미래가 없다는 지론이다. 지난달 22일 발령을 받고 부임한지 1주일 남짓,『아직 업무파악도 다 못했다』는 장관을 만나 말썽도 궁금증도 많은 대학입시제도의 개선방안과 우리교육의 여러현안에 대한 그의 소신을 들었다.
­이번 후기대입시 파문으로 입시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장관께서도 취임후 이와 관련해 몇차례 견해를 밝히신 것으로 압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94학년도부터 새로운 제도의 시행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주는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우선 금년말 치러질 93학년도 입시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국가의 감독기능이 강화될 뿐이지요.
94학년도 입시도 내신·수학능력시험·대학별고사라는 골격은 고칠 수 없습니다. 다만 일부 시행방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면 빨리 보완해 실시한다는 방침입니다.
­보완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새 제도가 수학능력시험의 채택여부를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는만큼 혹시 몇몇 상위권대학들이 본고사만을 치를 경우 국어·영어·수학등 3과목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교교육은 이들 과목 중심으로 왜곡될 것이 뻔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대학의 선택폭을 넓힐 수 있도록 본고사 과목수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중입니다.
­국회 간담회에서 98년이후 대학입시 완전자율화 가능성을 말씀하셨는데 94학년도 새 대입제도는 과도기적 제도라는 뜻입니까.
▲새 대입제도는 대학의 자율권이 상당히 보장된 것입니다. 다만 학생 선발권은 원칙적으로 대학의 고유권한이므로 언젠가 완전 자율화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계획입니다.
이 계획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중·고교 교육이 정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준거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SAT(대학진학 적성검사)처럼 공동평가 도구를 만드는등 여건을 조성해야 대학입시의 완전 자율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건만 되면 98년 이전이라도 입시자율화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교육을 왜곡시키는 원인은 대입경쟁이라고 생각됩니다. 해결방안이 없을까요.
▲교육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체적으로 사회분위기가 바뀌어야 합니다.
비뚤어진 교육관이 문제지요. 교육열만 하더라도 「내자식」에 대한 교육열이지 「우리자식」교육이라는 인식은 없습니다. 이런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봅니다. 학력에 따른 차별대우등 사회여건도 변하고 있으니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입시가 전면에 부각되는 바람에 우리사회에서 교육문제 논의가 늘 본질이나 핵심에서 빗나가는 인상을 받습니다. 가장 시급한 교육행정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대학육성입니다. 대학의 교육·연구수준이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낫다고 하는 서울대도 자체양성한 박사를 쓰지 못하고 외국대학박사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질을 높여야 합니다. 다행히 근래 우수한 교수들이 대학에 자리잡아가고 면학분위기도 점차 조성돼 조금만 지원해주면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보입니다.
­지난날 대학은 학원사태 등 교육외적인 문제로 교육이나 연구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이제 달라졌다고 보시는 겁니까.
▲5·16이후 정치적인 문제로 대학이 통제의 대상이 되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진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학생들의 민주화운동도 큰 역할을 해 사회전반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최근 몇년동안 대학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제간의 단절도 회복되어 가는 추세고요. 정부가 정책적·재정적 지원만 충분히 해주면 장래는 밝습니다.
­문제는 재원일텐데 정부의 형편이 그렇게 되겠습니까.
▲부닥쳐 봐야죠. 대학의 자율화와 재정지원 확대는 저의 신념입니다. 대학이 가장 앞선 투자대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립대학의 기여입학제 논의에 대해서는 어떤 방침이십니까.
▲교육의 최종 수요자는 국가인만큼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합니다. 대학교육의 70%를 사립대학이 맡고 있는 만큼 일차적으로는 국가와 사회가 사립대학을 지원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한계가 있어 궁여지책으로 기여입학제안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여입학제는 국가가 앞장설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고 학생선발권이 대학에 돌려졌을때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사회의 윤리규범 붕괴·가치관 실종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고 그 원인을 교육에서 찾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대학육성과 함께 역점을 두려고 하는 것이 전인교육의 강화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학생교육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회를 바로세우기 위한 시민교육·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이·청소년들이 누구를 보고 배웁니까.
소녀 접대부를 찾는 사람이 누구고,불량 비디오·만화를 만들어 어린이에게까지 보여주는 사람이 누굽니까. 우리사회의 규범상실과 혼란은 많은 부분 어른들이 어른 노릇을 제대로 못한데서 빚어진 현상입니다.
­교육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국민들의 협조를 구할 일이 많으실텐데 말씀해 주시지요.
▲우리교육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유아교육·영재교육·직업교육·대학교육등 단계·부문마다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또 시민 각자가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아 합의를 끌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민 각자가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내자식만 좋은 학교 들어가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좁고 비뚤어진 교육열과 관심을 『우리자식 모두를 어떻게 하면 바로 기를까』하는 한차원 높은 공동체적 시각으로 수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해결방안이 찾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장관이 되고 나서 혹시 생각이 달라지신건 없습니까.
▲생각이야 바뀔 것이 없지만 아무래도 말 조심을 하게 돼요. 전에 총장할때야 불평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장관은 행정의 책임을 지는 위치아닙니까.<정리=이덕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